인간은 태어난 이상 몸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크게 머리와 목, 몸통, 팔, 다리로 나눌 수 있는 인체 구조 속에서 한평생 살다 죽는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났다면 몸은 공평하게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의 몸’을 갖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생의 과정과 경험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젠더, 인종, 계급, 나이, 장애, 당대의 사회상에 따라 몸을 통제하고 규율하는 권력과 자본, 이에 저항하는 개개인의 의지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몸은 고유한 동시에 사회적 구성물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평등해 보이는 몸의 소멸조차도 그렇다. 18~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남아프리카의 코이족 여성 사르키 바트만은 큰 엉덩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신체 부위를 드러낸 채 영국과 프랑스의 공공장소에 ‘전시’됐다. 그러나 그의 죽음마저 이 야만적인 착취를 끝내진 못했다. 바트만은 죽어서조차 200년 가까이 프랑스의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됐다.
권력은 사회가 원하는 몸을 제시하며 ‘당근과 채찍’을 들기도 한다. 1970년대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은 과도한 노출을 한다는 이유로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됐다. 여성의 미니스커트를 탄압하던 권위주의 정부는 동시에 여성 경찰을 뽑을 때 지원자들의 치마를 들어 올리게 해 각선미 검사를 하기도 했다. 오늘날에 이르면 눈에 보이는 억압은 사라졌으나, 이상적인 미의 기준은 더 노골적으로 제시된다. 2010년을 전후로 여성 아이돌 그룹이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드러내는 의상을 입기 시작하면서 각선미 대유행이 불었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몸을 가진 이들은 수치심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회는 자본만 있다면 훨씬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부추긴다. 미용성형 시장은 종아리 보톡스 주사, 근육퇴축술, 신경성형술까지 개발한 지 오래다.
젠더, 출판 분야를 주로 맡아온 이유진 선임기자가 쓴 책 ‘바디올로지’(디플롯 펴냄)는 이렇듯 얼굴, 가슴, 엉덩이, 팔, 손, 발 등 인간의 몸 구석구석을 매개로 몸을 둘러싼 억압과 착취,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동서양 역사, 미술·문화·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이 흥미롭다. 책은 지난겨울 전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당시, 몸의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시민을 향한 헌사도 빼놓지 않았다.
이유진 저/ 디플롯/ 351쪽/ 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