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길고양이의 천국’이다.
보스포러스와 골든혼 해협을 따라 자리한 유서 깊은 지구(地區)에서는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먹이와 잠자리를 주고 귀여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길모퉁이에는 고양이 애호가인 주민들이 폭신한 털을 덧대어 만들어 놓은 수백 개의 고양이 잠자리가 있는데, 빈 요거트 통이나 플라스틱 병으로 바람막이까지 둘러쳐져 있고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살코기가 가득하다.
고양이가 편안히 몸을 누일 수 있도록 건물 1층 창턱에 베개와 담요를 놓아둔 곳도 있다.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도 마치 제 집인양 테이블 옆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있거나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기다리는 고양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행자라면 고양이를 테마로 한 카페나 ‘스트레이 캣 호스텔’을 방문해 볼 수 있다. 2009년 이스탄불을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때 비잔틴 교회와 오토만 사원이었던 하기아(아야) 소피아 박물관에 사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 중 한 마리인 ‘글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고양이 애호가인 음악가 시벨 레심지는 “이스탄불에서 고양이는 인도에서 소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레심지의 남편 역시 고양이를 어찌나 사랑하는지 길고양이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모터 달린 자전거를 타는 대신 회사까지 2마일 길을 걸어다니곤 한다.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올라온 이스탄불의 귀여운 길고양이 사진들은 수만 명의 팔로워를 자랑한다. 웹개발자들은 고양이 입양과 위치 파악을 돕는 앱을 만들었다. 지역 영화제작자들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비메오’에 영화 ‘나인 라이브즈’(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있다는 속담에서 유래 ─ 역자 주)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유튜브에는 최상의 고양이 안식처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인기다. 사진공유 사이트 인스타그램 상에 #catsofistanbul 해시태그가 들어간 고양이 관련 포스트 수는 5만 개가 넘는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서 근무하는 라나 바바크는 ‘이스탄불의 고양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웹사이트,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는데, 현재 그녀의 사이트 회원 수는 5만 명에 이른다. “통근길에 만나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올린 게 시작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사진공유로 시작해 고양이 애호가들의 뉴스포탈, 정보교환의 장으로 발전했으며 고양이 복지 개선을 위한 자선기금 마련 행사도 돕는다. 지난 6월엔 지역 건축가들과 협력해 낡은 고양이 보호소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역사가들은 고양이에 대한 소셜미디어 상의 폭발적인 관심이 종교와 전통, 실용적 측면에 뿌리를 두고 수백년째 이어져 내려온 고양이 열풍의 최근 사례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슬람에서 고양이는 특별한 존재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해치려고 다가가는 독사를 고양이가 저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가 하면, 무함마드가 자신의 숄 위에서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숄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고양이를 죽이면 신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사원을 지어야 한다”는 속담도 유명하다.
고양이 사랑은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 19세기에는 이스탄불 시내에서 급속도로 증가하는 쥐를 잡기 위한 용도로 고양이를 대량 번식시켰다. 그 전에는 쥐가 옮기는 전염병인 흑사병을 막는데 고양이들이 한몫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이스탄불의 예술과 정치문화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스탄불 지하철역들에는 고양이가 어부와 함께 포즈를 취하거나 갓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음미하는 사진이 눈에 띈다. 고양이 그림으로 정치인을 풍자하기도 한다.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를 풍자한 수염 달린 고양이 이미지는 수천 회 공유됐다.
2012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은 고양이 등 길거리 동물을 없애는 정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시민 3만 여명이 대규모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계획은 전격 연기됐다.
지역 당국에 따르면 이스탄불 시내 길고양이 수는 다시 증가 추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