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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의 동물원, 조선 선비들의 동물 관찰기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5-09-13 08:30:36
  • 수정 2015-09-13 08: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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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은 동물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을 발견했다. 동물 관찰기를 많이 남긴 성호 이익(1681~1763)은 고양이를 보며 삶의 조건을 찾는다. 한 떠돌이 고양이는 단속을 조금 소홀히 하면 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훔쳐 먹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천성이 도둑질 잘하는 '나쁜 고양이'라며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집 식구들이 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많이 주며 잘 길렀다. 배부르게 먹게 된 고양이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쥐도 잘 잡았다. 사람들은 '좋은 고양이'라고 칭찬했다.

이익은 탄식한다. "옳은 주인을 만난 다음에 어진 본성이 나타나고 재주도 또한 제대로 쓰게 되는 것이다. 만약 도둑질을 하고 다닐 때 잡아 죽였다면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아! 사람도 세상을 잘 만나기도 하고 못 만나기도 하는데 저 짐승도 또한 그런 이치가 있다."

옛 선비들은 동물 관찰기를 많이 남겼다. 동물 그림도 많이 있다.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왼쪽 위), 정선의‘초전영서’(왼쪽 아래), 벌레·나비·새 등을 그린 19세기‘화조충어도’. 모든 생명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고 유학자들은 생각했다. /알렙 제공 옛 선비들은 동물 관찰기를 많이 남겼다. 동물 그림도 많이 있다.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왼쪽 위), 정선의‘초전영서’(왼쪽 아래), 벌레·나비·새 등을 그린 19세기‘화조충어도’. 모든 생명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고 유학자들은 생각했다. /알렙 제공동물은 인간의 친구일까, 먹이일까? 옛사람도 이에 대해 논쟁했다. 만물은 모두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먹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대해 정자(程子)는 "이[蝨]가 사람을 물어뜯는데 사람이 이를 위해 태어난 것이냐"고 반문한다. 인간이 누구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듯 동물도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익은 "날짐승·길짐승 같은 것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사람과 같은데 어찌 차마 해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이수광(1563~ 1628)은 "늙고 병든 사람이어서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더라도 네발 달린 짐승 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옛 선비들은 부득이하게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만물은 인간과 동류(同類)"라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해충(害蟲)을 죽이는 일마저도 논란이 됐다. 조선 영조 때 소나무를 보호하느라 송충이를 잡게 했다. 매일 잡아야 할 양을 정해 잡게 했는데 일부 백성은 이미 잡아 땅에 묻은 송충이를 다시 꺼내 바치기도 했다. 이런 폐단을 없애고자 송충이를 태워버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영조는 "이것도 생명이 있는 것인데 태워버리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라며 반대한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원한을 갖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정조는 폐단도 없애고 원한도 막는 더 현명한 방법을 제시했다. "일찍이 듣건대 벌레가 바다로 들어가면 물고기와 새우로 변한다고 한다. 지금부터는 송충이를 주워 해구(海口)에 던지도록 하라."

저자는 미국 델라웨어대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30대 젊은 인문학도다.

유학자의 동물원 | 최지원 지음 | 알렙 | 360쪽 |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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