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拙速)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어설프고 빠름. 또는 그런 태도`라고 규정돼 있다. 졸속과 짝을 이루어 어울리는 문구는 졸속 행정, 졸속 심의, 졸속 수사 등이며 모두 부정적인 의미이다. 즉 졸속은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당위성을 포함하고 있다.
본디의 의미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손자병법 중 작전편에 졸속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손자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하면서, 만일 전쟁을 하게되면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질질 끌면 무기는 둔해지고 사기는 꺾여 성을 공격해도 힘만 소진된다고 경계한다. 오랜 기간 군대를 야전에 둔다면 국가 비용도 부족해진다.
손자는 또한 무기가 무뎌지고, 사기가 꺾이고, 힘만 소진하고, 재물을 소모시키면 그 폐해를 틈타 제후들이 일어난다고 경고한다. 아울러 비록 지혜로운자가 있다 하더라도 잘 수습할 수 없다면서 용병법에서는 `어설프지만 속전속결해야 한다[拙速]`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교묘하게 질질 끈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졸속이라는 고사가 떠오른 건 최근 일부 공기업들의 인사 정체를 보면서다. 경제 사회적으로 공기업이 해야할 업무가 막중한데도 공기업 인사절차가 꽉 막힌 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한국거래소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초 코넥스 시장을 선보였다. 코넥스 시장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추진사항인 `창조경제`를 최일선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이은 제 3의 주식시장으로서 이를 통해 중소·벤처 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창조경제의 숲을 열다`라는 구호가 말해주듯이 코넥스 시장은 많은 기대속에 화려하게 출발했다. 국무총리가 현장을 찾았고, 상장기업 대표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모아 대대적인 IR를 열기도 했다. 여당의 정책당국자들도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문을 연지 한달이 넘었지만 갈수록 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거래 부진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해법에 대해 국무총리실과 금융위원회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등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정작 코넥스시장을 운영하는 주체인 한국거래소의 이사장은 공석이다. 임기가 1년 정도 남았던 김봉수 이사장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석달전 사퇴했다. 이사장 선임을 위한 임원 후보 추천위원회가 꾸려졌지만 후보자 공모만 마친 상태에서 더이상 진전이 없다. 6월 청와대에서 `일단 정지` 신호를 보낸 이후 전혀 진척이 없다.
더구나 지난달에서는 한국거래소에서 전산사고가 두번이나 발생했다. 거래소는 증권산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다. 하루 수십조원의 주식 채권 거래가 이뤄지는 거래소에서 전산 사고는 금융시스템이나 신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기업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질타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효율성을 중시하고 경쟁력이 전부인 민간기업은 이런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막중한 업무가 있는데도 수장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지 않는다. 그런식으로 비워도 되는 자리라면 자리를 없애는게 낫다.
그래서 병법의 대가 손자는 차라리 졸속이 낫다고 했다. 준비가 다소 미흡하지만 기회가 생기면 즉각 전쟁을 개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병법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