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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할 후각능력…100여년 전부터 과학수사에 활용
개의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의 후각 세포는 인간의 44배인 약 2억2천만개다. 냄새 식별능력에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함을 자랑한다. 개는 4천배로 희석한 초산, 100만배로 묽게 만든 염산도 냄새를 식별하는 동물로 알려졌다.
경찰견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편이다. 중요 인물이 참석하는 행사장이나 테러 발생 현장에서 특공대원들이 특수견과 함께 다니며 현장을 경비·수색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폭발물 탐지견의 후각이 최첨단 탐지 장비보다 훨씬 정확하다는 실험 결과가 있을 정도로 치안·국방 분야에서 개의 활용도는 높다.
개는 '첨단 수사장비'로서도 이미 100여년 전부터 인정받았다. 범죄 현장에 남은 미량의 체취를 기억한 뒤 냄새를 추적, 증거물 또는 용의자를 찾아내거나 도주로를 파악해 수사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1888년 벨기에 경찰이 처음 개를 수사기법으로 도입한 이래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체취도 지문이나 DNA처럼 각자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체취, 즉 '사람 냄새'도 개인을 특정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훈련된 개는 이처럼 고유한 개개인의 체취까지 구별해 내는 수준이라고 한다. 개의 후각이 목격자 진술보다 정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범죄가 지능화하면서 지문이나 DNA 등이 현장에 남지 않는 사건이 많다. 그러나 체취는 범인이 거쳐 간 거의 모든 공간에 미량이나마 존재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체취견을 수사에 적극 활용하고, 체취견들이 포착한 냄새 증거를 효과적으로 수집·관리할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개의 후각으로 식별한 체취를 법정 증거로 인정한 실제 사례도 있다. 1987년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는 여고생 강간미수 사건에서 체취견이 맡은 현장 증거물 냄새와 피고인의 체취가 동일하다는 수사보고서를 유죄 증거로 인정했다.
▲체취견과 늘 함께…'핸들러' 역할 중요
체취견을 무작정 현장에 풀어놓는다고 알아서 제 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체취견도 하나의 '고급 수사장비'인 이상 이를 다루는 경찰관의 몫이 크다. 전문 교육을 받은 핸들러가 그 일을 맡는다.
한국의 경우 체취견을 보유한 10개 지방경찰청에서 핸들러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경찰교육원에서 전문 과정을 이수한 인력이다. 체취견의 역량은 핸들러와 체취견의 교감 정도에 크게 좌우되므로 핸들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경기남부청 핸들러 조헌오 경위는 "출동이 없어도 훈련을 자주 하고 산에도 데려가는 등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든다"며 "평소 함께 있으면서 자주 훈련하면 교감이 높아지고, 현장에 나갔을 때 몸놀림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핸들러는 체취견을 통제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통제해서도 안 된다. 체취견이 냄새를 추적하는 행위는 개에 내재한 사냥 본능에서 비롯한다. 체취견이 수색에 몰두할 때 핸들러가 자꾸 개입하면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된다.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키지 말고 개에게 맡기라." 핸들러들이 원칙으로 삼는 말이다.
다만 핸들러는 체취견이 효율적으로 수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지형지물, 바람 방향, 온도, 햇볕 등을 즉각 파악하는 능력은 필수다. 이런 조건들을 토대로 수색 대상이 있을 개연성이 큰 구역을 신속히 추정해 체취견을 인도해야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 낭비를 피할 수 있다.
핸들러도 인간인 이상 체취견이 안쓰러워 보일 때도 많다. 체취 추적은 개의 사냥 본능을 이용하는 활동이므로 배가 고플수록 능력치가 높아진다. 수색이 주로 주간에 이뤄지는 탓에 낮에는 먹이를 제대로 줄 수 없다.
길을 가던 체취견이 물을 마시거나 무엇인가를 먹으려 하면 핸들러는 제지해야 한다. 해로운 물질을 섭취했다가 탈이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체취견은 핸들러가 주는 음식만 먹고, 마시라고 하는 물만 마신다. 혹 길을 가다 마주치는 시민들이 덩치 큰 체취견을 보고 놀랄까 봐 함부로 짖지도 못하게 한다.
▲한국 경찰도 체취증거 주목…10개 지방청서 체취견 운용
한국 경찰이 개를 수사 분야에서 활용한 지는 40여년이 됐다. 1973년 내무부 치안국에서 개 13마리를 일본에서 들여와 수사·방범 활동에 투입한 것이 체취견의 시초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인 1천만원을 주고 데려왔다고 한다.
이후 수사견들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 행사에서 폭발물 탐지견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인간의 몸냄새를 맡는 수사견을 전문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2012년 체취견을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올 6월 현재 체취견은 서울, 경기남부 등 전국 10개 지방경찰청에서 16마리가 운용되고 있다.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피의자 추적은 물론 실종자나 치매 환자 수색, 범죄 피해자 시신 추적 등 여러 상황에 투입된다.
체취견은 부모 성격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엄선한다. 이후에는 훈련이 중요하다. 핸들러에 대한 복종은 기본이고, 부패한 시신과 성분이 같은 인공 시료를 이용해 시신 냄새를 추적하게 하는 연습도 한다. 평지, 산악 등 다양한 지형 조건을 접하게 하고, 군견 훈련소에서 일정 기간 위탁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한국 경찰이 보유한 체취견은 셰퍼드와 마리노이즈 2종이다. 명민함과 적극성, 지구력 등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은 종이다. 체취견은 성격이 중요하다. 진돗개와 같은 토종은 체취견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종으로 평가된다. 영리하긴 하나 '첫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강해 핸들러가 바뀌면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이용한 과학수사 기법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체취견 활용은 경찰이 주목하는 차세대 기법의 하나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 17개 지방청 모두 체취견을 보유하도록 하고, 핸들러는 오로지 체취견 운용만 담당하도록 업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체취견의 역량을 높이고 냄새 증거를 수집·관리할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