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길고양이 600여 마리를 잡아 끓는 물에 집어넣어 도살한 뒤 ‘나비탕’ 재료로 건강원에 판매한 정모 씨(55)가 경찰에 붙잡혔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 씨는 10일 창원지법 제3형사부(부장판사 정재수)에서 열린 2심 선거공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때와 같은 결과였다.
당시 동물보호단체들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반발했지만 2심 판결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동물자유연대는 10일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 수백 마리를 학살한 범인에게 집행유예는 너무나 온정적인 처벌”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맞아 반려동물이 점점 늘고 있지만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로 동물보호법 시행 25년째를 맞았지만 한국에선 동물학대 단독 범죄만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선 투견으로 개를 다치게 해도 징역 20년이 구형되거나 반려견을 무참히 살해한 일반인들에게도 1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되는 등 처벌이 훨씬 강력하다”고 말했다.
동물학대 사건은 검찰 기소도 쉽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동물학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사건은 287건이었지만 그중 절반 이상인 155건이 고의성 등이 입증되지 않아 불기소 처분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2년 발생한 ‘악마 에쿠스’ 사건이다. 당시 피의자는 자신의 비글종 개를 에쿠스 트렁크에 매단 채 질주해 죽였지만 검찰은 견주가 의도한 행위인지를 밝혀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동물학대 신고는 경찰에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단체 쪽을 통해 제보하는 사람, 직접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국민신문고 등에 글을 올리는 사람 등 다양하다”며 “한 달에 크고 작은 동물학대 사건을 100건 이상 제보받는다”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달 초엔 자신의 맹견이 새끼 길고양이를 참혹하게 물어뜯는 장면을 내보낸 인기 BJ 김모 씨(22)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성동경찰서에 신고했다. 현재 관련 사건은 김 씨의 주거 지역인 경기 여주경찰서로 넘겨져 수사가 진행 중이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전례 없는 동물학대 사례인 만큼 강도 높은 판결이 나와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동물보호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법령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으론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거나 굶겨 죽이는 행위, 다른 동물의 먹잇감으로 주는 행위 등이 동물학대로 규정돼 있다.
서국화 변호사(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법제이사)는 “반려동물에게 폭행을 가해도 상처가 나지 않으면 상해 입증이 힘들고 소주를 먹이고 불을 붙이는 등 고문 행위를 가해도 고의성을 입증하기 힘든 구조”라며 “스위스나 독일처럼 ‘동물을 가둬 놓고 사격해 죽이는 행위’ ‘전기 기구로 고문하는 행위’ 등 학대 유형을 세분해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