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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기행
  • 편집부
  • 등록 2016-08-22 09:48:34
  • 수정 2016-08-22 09: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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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이라 불린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전 세계 곳곳에서 각종 동물들을 수집해 자신의 왕국에 데려다놨다. 베르사유 궁전의 동물원 '메나쥬리'(Menagerie)는 길거리에 얼어죽은 시체가 뒹굴던 시대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완성된 사치의 소산물이었고, 이는 평민들의 분노를 샀다.

18세기 후반, 이곳에 살던 동물들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폭발하면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왕후가 베르사유 궁전을 떠난 뒤, 이 곳에 들어온 자코뱅파 급진주의자들이 동물들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원숭이와 사슴은 피혁상에게 넘겨졌고, 새들은 수수께끼처럼 사라졌으며, 오로지 말이나 소 등 쓸 만한 동물들만 남았다.

이들이 나머지 동물들을 처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동물원도 아닌 식물원에 보냈을 때, 곳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동물이 없는 생태 왕국은 완전한 왕국이 아니다." "문명 국가라면 반드시 공공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

왕실에서 공공 소유로 탈바꿈한 이 메나쥬리의 운영 방식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졌다. 맹수와 온순한 동물의 비율, 안전 문제, 관련 법규와 예산 등등…. 동물원은 시민 사회의 요람 역할을 했고, 대혁명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귀족들이 약탈해 온 얼룩말, 사슴영양, 사자 등 동물들은 이곳에서 공공의 관리하에 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 세계의 모든 동물원에는 '사연'이 있다. 대만의 주목받는 신예 소설가인 나디아 허가 쓴 '동물원 기행'은 런던에서 상하이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시의 기억을 품고 있는 14개의 동물원을 둘러보고 쓴 책이다.

그의 동물원 기행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원인 영국 런던동물원에서 시작된다. 부지 주인은 영국 여왕이지만 동물원 자체는 국가 예산이 아닌, 학회 회원과 후원자의 후원금 그리고 입장료 수입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은 필수. 호랑이 구역 내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상영하는 등 재미난 이벤트들이 펼쳐진다.

그 다음은 독일 베를린이다. '초로기셔 가르텐 베를린'이라는 길고도 괴상한 이름을 가진 베를린동물원은 록 음악과 영화, 문학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물원의 울타리가 야간 폭격을 당하면서 황량하고 적막한 도시에 내려앉은 파편 더미 속에서 동물들이 영혼처럼 불빛 속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곳이기 때문.

동물원 원장을 지낸 카를 하겐베크라는 사람은 베를린동물원에서 인간을 전시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순수 자연 상태의 인종'을 '인류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한 것. 그의 동물에 대한 열정은 이토록 잔혹한 방식으로 표현됐지만, 세계 최초로 울타리 대신 도랑을 파 자연 상태처럼 동물을 볼 수 있는 '울타리 없는 동물원'을 만드는 등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나디아 허를 따라 이탈리아, 중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 곳곳의 동물원을 돌아 다니다 보면 단순히 동물을 가두고 구경할 수 있도록 한 교육장이라고만 생각했던 동물원이 달리 보인다. 각 나라의 동물원이 그 나라의 역사, 민족성, 지리적 특징 등을 품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덮고 떠올려보니 어떤 형상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동물원 기행= 나디아 허 지음. 남혜선 옮김. 어크로스 펴냄. 406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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