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은 개고기 애호가였습니다.
그 사실은 다산이 흑산도에 유배된 형 약전(丁若銓, 1758~1816)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산은 형이 보내 온 편지를 받고 이렇게 답장합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는 도무지 먹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라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개(山犬)가 백 마리 아니라 천 마리도 넘을 텐데, 제가 거기에 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신미년(1881) 겨울)
그러면서 다산은 산개를 잡을 묘안까지 설명해 줍니다. 섬 안에 활과 화살, 총과 탄환이 없다고 해도 그물이나 덫을 설치할 수는 있지 않느냐면서 친절하게 덫을 놓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 방법은 여기서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이어 다산은 개고기 삶는 법도 찬찬히 설명합니다.
"개고기 삶는 법을 말씀드리면,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개를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에 넣어서 바로 맑은 물로 삶습니다. 그리고는 일단 꺼내 놓고 식초 ‧ 장 ‧ 기름 ‧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박 초정(朴楚亭)의 개고기 요리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신미년(1811) 겨울)
‘박 초정’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朴齊家, 1750〜1805)입니다. 정약용은 박제가로 부터 편지로 개고기 조리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진정한 개고기 애호가는 박제가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글에서 개고기 관련 글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산은 마지막으로 형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하늘이 흑산도를 형님의 탕목읍(중국 주나라 때 천자가 제후에게 목욕할 비용으로 삼도록 내린 땅)으로 만들어 주어 (개)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게 하였는데도 오히려 고달픔과 괴로움을 스스로 택하다니, 역시 사정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마(들깨) 한 말을 편지와 함께 부쳐 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신미년(1811) 겨울, 다산시문집 권 20,서, ‘박 초정의 개고기는 삶는 법’)(김정호, 『조선의 탐식가들』)
다산이 개고기를 자주 먹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산은 개를 잡아 식도락을 즐겼던 것은 아닙니다. 다산이 편지에서도 밝혔듯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오랜 유배 생활, 정확히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버텨 내기 위한 호구지책이었을 뿐입니다.
여기에,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 시대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만일 내가 과거의 사람이 놓여 있던 그러한 처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했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