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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위작임이 드러났지만 그의 위작을 소유하던 사람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로 이름을 날리던 때였다. 가짜라고 해도 어쨌든 대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미술계도 위작·대작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25년 넘게 공방을 거듭하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은 지난해 재점화됐다. 위작 여부를 가리기 위해 프랑스의 과학감정 업체까지 동원됐다.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도 위작 논란에 휩싸였으며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은 작품을 전문 화가에게 맡긴 뒤 자신의 작품이라고 속여 팔았다는 대작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논란은 대중에게도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미술품 위작은 어떻게, 왜 제작되고 무엇 때문에 발각되는 걸까. 위조꾼들은 어떤 방법으로 전문 감정가의 눈을 피해 미술계를 속이는 걸까. 미술범죄 분야 전문가인 노아 차니 교수는 책 '위작의 기술'에서 위조꾼들의 교묘한 속임수를 들춘다.
저자는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까지 미술계에서 성공한 위조 범죄와 실패 사례를 골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위조꾼들은 특정 작품을 베껴 진짜로 둔갑시키거나 유명 작가의 화풍으로 작품을 만든 뒤 새로 발견된 진작인 양 시장에 내놓는다. 전문 분석법을 통과할 만큼 빼어난 실력과 기술이 필수다. 작품의 출처나 소장 기록 등 관련 문서를 날조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모작도 종종 있었다. 공방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지내면서 작품을 공동제작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도 작품을 디자인하고 감독할 뿐 실제 작업은 조수들이 맡는다. 미술가가 직접 혼자 작품을 만들어야 '진작'이란 관념은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
그는 위조꾼들이 단지 돈 때문에 위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위작은 명예, 복수, 권력, 천재성 표현 등에 대한 욕망이 뒤얽혀 탄생한다. 실제로 위조범들의 첫 번째 동기는 대부분 '복수심'이었다. 자기 작품을 알아주지 않은 미술계에 앙갚음하고 전문가들이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천재성과 우월성도 증명한다.
동기야 어쨌든, 아무리 뛰어난 그림이라도 위작은 일종의 '사기'다. 저자는 미술품 위조에 대한 관대한 시선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 위조가 생명을 위협하지도 않고 부유한 일부 개인과 얼굴 없는 기관에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대중도, 수사기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는 위작이 단순한 사기에 그치지 않고 학계, 더 나아가 미술의 역사 자체를 오염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구매자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방면에서 자문받는 등 미술을 최대한 공부할 것, 작품 판매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 출처조사원 제도를 만들 것 등을 제안한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가려진 위작의 세계를 풀어낸 책은 미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책에 실린 진작과 위작 그림을 나란히 비교하며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아 차니 지음/ 오숙은 옮김/ 학고재 펴냄/ 352쪽/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