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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빈곤층에 수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공정무역 인증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워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그리고 커피 산지는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보다 상대적으로 10배나 부유한 멕시코나 코스타리카 등이 대부분이다. 빈곤퇴치에 더 효율적인 모양새는 최빈국의 비 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것이다.
한 외부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웃돈 중 빈국의 커피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1% 미만이다.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에 식수 펌프를 보급하려 했던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놀이기구를 통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유력 기업인과 정치인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펌프 동력 공급에 아이들의 노동이 동원되는 등 사고가 속출하자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폐업했다. 선의와 열정에 의존한 ‘경솔한 이타주의’의 실패 사례였다.
비슷한 시기에 기생충구제 자선단체를 설립한 마이클 크레머는 아프리카 학교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교과서를 제공하거나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이는 등 다각적 방법을 동원했지만, 출석률은 오르지 않았다. 우연히 동료의 권유로 기생충 감염 치료를 했더니, 결석률이 25%나 줄었다. 무분별한 ‘선행’이 아닌 데이터를 통한 냉철한 이성의 이타심이 보여준 성공 사례였다.
만약 세계 어딘가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구호금이 속속 도착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정서적 호소력’에 따라 돈의 분배가 달라진다.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1만 5000명 사상자)과 2010년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15만 명 사상자)으로 지원받은 국제원조금은 각각 50억 달러였다. 규모가 더 큰 재해와 빈국에서 발생한 재해에 더 많은 구호금이 전달되는 게 합리적이지만, 누가 더 많이 이 정보를 전달받고, 정서적으로 얼마나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지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지진 사망자 수보다 결핵 등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 수가 많은 데도, ‘선행’의 수위는 다르다. 일본 지진 당시 기부금이 사망자 1명당 33만 달러였던 데 비해,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 1명당 구제비용은 평균 1만 5000달러에 불과했다.
재해는 우리 뇌에 ‘긴급 상황’이라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감정을 유발하지만, 질병이나 가난 등 일상적 긴급 상황에는 감정이 무뎌져 있기 때문이다.
열정을 앞세운 선행은 때론 무익한 결과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로는 별 효과가 없는데, ‘열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저자가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냉정’과 ‘이타주의’는 서로 갈 길이 다른 야누스 같지만, ‘선을 위해 악을 행하는’ 것처럼 실질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부를 위한 돈벌이’는 그 대표적 예다.
고소득 직장을 버리고 남을 돕는 일에 뛰어드는 ‘열정적 선행가’들이 꽤 많지만, 저자는 고소득 직장에 종사하면서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이타주의는 ‘희생’이 아닌 ‘(타인의 삶을) 개선’의 의미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어떤 선행이 최대 다수에게 최대 혜택을 제공하는지 판단하려면 착한 일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선행이 선의에만 의존하면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다”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서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312쪽/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