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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언대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글쓰기를 가르친 그는 2004년 48세에 인도로 돌아왔다. 부모와 함께 살았고, 평생 바라봐온 히말라야로의 귀환이었다. 이곳을 그는 "종교 언어나 과학 용어로도 그 존재감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 어떤 펜으로도, 수채화로도, 사진으로도 산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산에서 자꾸만 내 모습을 보고 내 안에서 산의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며, 영원의 무한하고 친밀한 연대 속에 우리 모두를 품은,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더 큰 존재를 느낀다."
그에게는 히말라야에 오를 이유가 있었다. 2008년 어느 새벽에 당한 폭행사건 때문이었다. 아내와 그는 집에서 침입자 4명에게 무참히 폭행당하고 칼에 찔렸다.
인도 언론은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미국인 작가와 아내 칼에 찔리다"라는 기사가 방송을 탔다. 몇 개월에 걸친 수사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고향에 살면서도 그는 이방인임을 뼈저리게 실감한 경험이었다.
힘겹게 그는 두 번째 생을 얻었다. 그리고 새로운 욕구가 일었다. 다시 일어서서 중력을 느끼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 울퉁불퉁한 산길 오르막을 다시 밟고 싶다는 욕구였다. 한편으로는 손의 신경이 모두 끊어진 손 건강을 회복해 자신의 이야기를 자판을 두드려 글로 쓰고 싶다는 욕구였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뒤 그는 오히려 육신을 더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습격 몇 주 뒤 그는 집에서 가까운 플래그힐 언덕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퇴원한 뒤 6주까지도 지팡이를 짚어야 했던 그였다. 다리를 끌고, 그림자만 봐도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그가 정상에 오른 건 단순한 충동 때문이었다. 우뚝 솟은 히말라야를 보면 치유될지도 모른다는 충동.
정상에 오르자 불안감이 사라졌다. 앞에는 눈 덮인 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현지 주민들이 걸어놓은 기도 깃발 수십 개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는 산과 하나가 된 일체감을 느꼈다. 그때 눈앞에 들어온 봉우리가 반다르푼치였다. 동쪽으로는 협곡이 흘렀고, 그 옆에는 '축복을 내리는 여신'이란 뜻의 난다데비가 서 있었다. 이 봉우리들은 그에게 치유와 위안을, 분노와 두려움에서 해방을, 초월로 넘어가는 경계를 상징했다.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를 오르는 여정의 갈피마다 그는 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슬며시 끼워 넣는다. 랠프 월도 에머슨, 물리학자 앨런 라이트먼,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까지 동원해 산에 관한 철학을 소개하고 순례자나 탁발승, 무사들, 가축지기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산에 자신을 온전히 바쳤다. 저자 또한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혼자서는 결코 얻지 못할 경험을 위해, 세상을 보는 창을 새롭게 열기 위해 그는 산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야만적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숱한 신화와 전설, 설화를 품은 히말라야는 그렇게 치유의 힘으로 그를 품었다.
스티븐 얼터 지음/ 허영은 옮김/ 책세상/ 1만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