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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문명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7-05-13 21:06:16
  • 수정 2017-05-13 21: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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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는 파트로글로스를 죽이고 그의 무구를 벗겨 자기 몸에 걸친다.

그 즉시 전쟁의 신 아레스가 그의 몸에 들어가 그의 사지는 투지로 불타올랐다. 아킬레우스는 슬픔과 헥토르에게 복수하려는 욕망에 미쳐 광란의 전투 끝에 헥토르와 일대일로 한쪽이 죽을 때까지 결투를 벌인다. 자신을 쳐부순 적을 밟고 서서도 아킬레우스의 통절한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헥토르는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죽은 뒤 자신의 시신을 예우해달라고 청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아킬레우스는 거절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하고는 헥토르의 육신을 전차 뒤에 매달아 끌고 다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광기를 만나는 상황이다. 싸움 한복판에서 자제력을 잃은 이들은 그야말로 '신들린' 사람이다.

미국 사회학자 앤드루 스컬은 세상이 광기를 가진, 다시 말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문명이 어떻게 정의하는지 분석했다. '광기와 문명'은 세상이 광기 어린 사람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원인이 무엇이며, 그들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40년 동안 추적해온 결과물이다.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통해 중세부터 20세기까지를 다뤘다면, 이 책은 고대 히브리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21세기인 현재를 탐구한다.

광기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은 20세기 중반에야 이뤄졌다. 1950년대에 들면서 미국`영국 등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현대적 약물치료가 정신질환 치료에 도입되면서 효과를 내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제약회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신경질환에 도움이 되는 약을 쏟아냈다. 제약회사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약물치료는 탈시설화에 기여했지만 핵심 이유는 아니었다. 수용 시설과 처우 잔인성에 대한 인도주의적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사회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저자는 "광기는 여전히 근본적인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뇌의 구조와 기능 자체가 사회환경의 산물이기에 광기는 문명에서 인식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식의 역사를 통해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앤드루 스컬 지음/ 김미선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 708쪽/ 3만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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