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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없이 당분간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7-08-21 09:43:16
  • 수정 2017-08-21 09: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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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22인의 손바닥소설을 묶은 ‘이해 없이 당분간’이 출간됐다.

임현(34)에서 이제하(80)까지 노소 작가들이 망라됐다. 촛불시위가 절정에 오르던 올 2월에 청탁했고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에 200자 원고지 25장 분량의 짧은 소설들을 완성했다. 자연스레 탄핵 전후 격렬했던 한국사회 지형이 반영됐고 여전히 지속되는 고단한 이들의 일상도 다양한 방식으로 스며들었다. 이들의 손끝에 묘사된 작금 우리는 어떤 터널을 지나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느 지점을 향해 가고 있을까.

촛불시위 국면을 직접 배경으로 선택한 조해진의 ‘빛의 온도’는 아프고 따스하다. 화자의 아버지는 남의 나라 전쟁에 돌아온 지 10년째부터 피부가 곪고 종기가 나고 잇몸이 무너지는 후유증을 앓기 시작한 인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이를 설정한 것인데, 이들이 ‘고엽제전우회’를 결성해 활동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화자인 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진 지 오래고, 아버지는 홀로 연금에 의지해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는 처지. 딸은 촛불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그 아버지를 목격하고 뒤를 따르다 놓치고 만다. 딸은 시청 쪽 군중과 합류하는 캐릭터이고, 아버지는 광화문 태극기 시위대 쪽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딸의 독백, 아니 작가 조해진의 이런 마지막 지문은 이념과 주장의 차이를 떠나 모든 이들을 희미한 온기로 감싼다.

‘짧아도 괜찮아’ 첫 번째 시리즈로 나온 이 책에는 이밖에도 손보미 임승훈 김남숙 송지현 정용준 김덕희 오수연 조수경 김연희 이시백 조해일 김종옥 이연희 박솔뫼 최정화 백가흠 한창훈 백민석이 작품을 실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소설 읽기란 증강된 진실로 쾌적한 독단을 치료하는 일”이라면서 “절망의 시대에 그런 것만큼, 희망의 시대일 때도 역시 그렇다”고 책 뒤에 썼다.

걷는사람/ 236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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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펫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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