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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대니얼 대닛 등 세계적 석학이자 내로라하는 진화론자인 16명의 저자는, 지적설계론이 과학이론의 외양을 갖추려 하지만 세상과 생명이 초자연적 신(神)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된다고 보는 창조론에서 신을 숨긴 창조론의 변형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적설계론은 생물의 어떤 특징들은 자연선택으로 진화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 어떤 지적인 행위자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의 전개 과정과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대응을 쫓아가다 보면 표층과 심층이 어긋난 미국 사회의 모순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첨단 정보기술(IT) 혁명을 이끌고, 우주개발과 무기산업을 주도하는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의 과학기술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신론자가 전체 국민의 90%를 차지할 만큼 종교적 색채가 짙은 나라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은 여전히 '기독교 근본주의'라 할 만큼 성경 중심의 보수적인 기독교사상의 강한 자장 안에 있다.
이런 미국이 현대 문명의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종교와 과학 간의 화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미국인들 가운데 절반은 성경에서 묘사하는 창조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관점에 서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지구와 생명의 역사에 관한 현대 과학이론을 대부분 수용하되, 그 출발과 전개 과정이 신의 섭리를 따른다고 믿는다. 로마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도 대체로 이런 유신론적 진화론을 옹호한다.
지식인들 가운데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등장한 이신론(理神論) 신봉자도 적지 않다. 이신론은 신의 존재는 믿지만 세상사에 관여하는 인격적인 신과 초자연적 현상은 부정한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나 이신론은 과학과 차원이 다른 신학 혹은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과학과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은 이와 다르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지적설계론의 문제는 과학이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과학이 아니면서 과학을 가장해 대중을 현혹하고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과 종교 간의 평화가 깨지고 불화가 생겨난다.
리처드 도킨스 저/ 존 브록만 편/ 김명주 옮김/ 336쪽/ 바다출판사/ 7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