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방콕에서의 낯선 일상이 익숙해질 무렵, 작가는 다시 배낭을 싼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방랑이 시작되었고, 동남아 10개 나라, 50여 개의 도시를 거치며 남긴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글은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핑계로 움직였지만, 여행에세이를 4권이나 출간한 작가의 여행병이 도졌을 터다.
작가는 기름기 쫙 뺀 담백한 말로 여행을 기록한다. 에피소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배낭여행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값싼 숙소를 찾아 헤매고, 호객꾼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고,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인 거리를 삼십 시간 넘게 육로로 이동한다. 이런 궁핍한 여행이라도, 여행은 늘 넉넉한 선물을 준비해놓고 있다. 작가는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고, 낯선 풍경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자신의 내밀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고, 무심코 흘려보낸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여행이 아니라면 쉽게 얻지 못할 것들이다.
저자 감성현은 집주인 몰래 월세로 방을 내놓고, 그 돈으로 가장 저렴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따뜻한 나라로 떠나 실컷 글을 쓸 생각이었다. 알지 못했지만 길고 긴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감성현 저/ 슬로래빗/ 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