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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점가를 가장 뜨겁게 달군 소설가는 조남주가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가면산장 살인사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까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장르문학을 천시하는 한국 문단의 선민의식 때문인지 한국은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라고 할 사람조차 전무하다. 당연히 연구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계정민 계명대 영문과 교수가 펴낸 신간 '범죄소설의 계보학'이 신선한 것도 이런 이유다.
영문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는 그동안 평론가들이 소홀히 다뤘던 범죄소설을 영미문학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범죄소설을 둘러싸고 씨줄 날줄로 얽히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다양한 자료로 설명해 마치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범죄소설은 장르 특성 때문에 국가권력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범죄자를 응징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정한 기준과 인간의 상상력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범죄소설은 시대의 나이테처럼 쌓여갔다. 시대와 충
실히 호응한다는 점에서 계 교수 말대로 범죄소설에 문학적 시민권을 충분히 부여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한국 문단도 추리소설을 천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활발히 창작하고 평론해야 하지 않을까. 히가시노가 점령한 서점가를 보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추리소설은 단순히 소설을 넘어 영화, 드라마로 활발히 제작된다. 어찌 보면 콘텐츠산업의 경쟁력인 셈인데, 공자왈 맹자왈을 읊으며 순수문학에 자폐적으로 집착하는 문단의 관행에서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계정민 지음 / 소나무 펴냄 /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