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랫동안 페미니즘 시각에서 대중문화를 비평해온 미국의 작가이자 문화비평가 앤디 자이슬러는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에서 최근 우리 곁에 가까워진 페미니즘의 상업화 측면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20년 전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은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라고 믿었고 직접 페미니즘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대중문화와 언론, 페미니즘의 상호 작용 속에서 변화가 일면서 어느새 페미니즘이 유명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쓰이게 됐고, 여성들이 쓰는 생활용품의 광고 문구로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페미니즘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교묘하게 포장되고 상업화하는 사이 페미니즘 운동의 전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안들은 오히려 퇴보를 거듭했다는 주장이다.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과 남녀 임금 격차, 육아 휴직 등 절실하고 복잡한 문제들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성 무료진료소를 폐쇄하려는 법안이 통과될 조짐을 보이고, 페미니스트 비디오게임 비평가가 테러 협박 편지를 받았으며, 흑인 여성들을 성폭행 대상으로 삼고 정보를 수집한 경찰관은 해고당하기 전에 1년 가까이 유급휴가를 즐기는 일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여직원들에게 연봉 인상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말했고,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남녀의 임금 격차 금지법안에 두 번이나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발언권을 얻는 페미니즘은 이성 간의 연애와 결혼,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경제적 성공, 매력적인 외모를 가질 권리에 집중하는 "언론 친화적인 페미니즘"으로 국한된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저자는 '시장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조류의 출현과 그로부터 생겨난 페미니스트의 정체성 변화를 다루면서 아직 완수하지 못한 과제들을 제시한다. 대중문화에서 변질되고 퇴색한 시장 페미니즘을 경계하고 성평등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파악해 치열한 싸움을 계속 벌여 나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앤디 자이슬러 저/ 안진이 옮김/ 412쪽/ 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