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분노와 용서:적개심, 아량, 정의
  • 김진성 기자
  • 등록 2018-06-10 19:44:45
  • 수정 2018-06-10 19:45:22
기사수정

   
 
놈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등과 함께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꼽혔던 마사 C 누스바움 미국 시카고대 철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법철학자이자 고전학자, 여성학자 등 다양한 자신의 전공을 충분히 살려 ‘분노’의 문제를 다룬다.

역사적으로 분노는 남성적인 것, 분노하지 않는 것은 약하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분노의 본질은 복수와 연관돼 있다. 분노라는 개념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 중요한 존재가 심각한 부당행위를 당했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그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나쁜 결과를 겪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그 중요한 하나는 ‘인과응보’라는 방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분노와 보복의 성향은 인간의 심리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과응보를 통해 이미 손상된 것을 복구하거나 미래의 잘못을 억제해 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은 동서양 어디서나 나타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저자는 간디의 말을 빌려 “눈에는 눈을 고집하면 온 세상의 눈이 멀게 된다”며, 역사적으로 봐도 보복은 폭력을 부를 뿐 세상을 바로잡지 못했던 원시적 방식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분노를 가족 등의 ‘친밀한 사적 관계’와 일상과 직장에서의 ‘중간 영역’ ‘정치적 영역’ 등 세 영역에서 다룬다. 영역마다 분노의 대응방식도 다르다.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사법제도에 분노라는 감정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범죄를 예방하거나, 범죄피해를 사후적으로 복구하는 데에 분노라는 감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분노 감정이 개입할 경우 사법제도가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 사이에서 불균형하게 작동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는 “공평한 정의를 이루기 위해 분노를 내려놓는 건 소심한 반응이 아니다”라며 분노의 해결은 “순전히 미래지향적인 문제, 사회적 제도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다루는 문제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 뿌리와이파리/ 584쪽/ 2만8000원.

0
마이펫뉴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