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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은 방의 개수보다는 타고 들어갈 만한 가스배관이나 굴뚝은 있는지, 몰래 숨어있거나 도주할 만한 지하실 등에 관심을 가진다. 몰래 땅을 파고 들어갈 만큼 집 주변의 흙이 부드러운지를 알아보기 위해 토양의 상태를 조사해볼 수도 있다.
<도둑의 도시 가이드>는 도둑, 경찰, 건물관리인, 보안전문가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뉴욕타임스 등 매체에 건축과 범죄에 관한 글을 써온 블로거인 저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훔치려는 자’ 도둑과 ‘지키려는 자’ 경찰이 힘겨루기해온 역사를 들여다봤다. 1986년 한 무리의 은행털이범들이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의 할리우드 지점에서 250만달러가 넘게 재물을 훔쳤다. 이들은 흙의 종류와 지하 수도 연결 상태 등을 치밀하게 조사한 후 약 84.95㎥의 흙을 파내서 땅굴을 만들어 은행 안에 들어왔다.
로스앤젤레스의 도둑들은 한 주택을 털기 위해서 그와 연결된 세 주택의 벽을 뚫어서 침입로를 만들었다. LA경찰청은 도둑들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찰 헬기 순찰대를 두고 주기적으로 항공순찰을 한다.
저자는 “침입절도는 개인 공간과 인간 존엄이라는 개념 자체를 공격하는 끔찍한 범죄”라며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때로는 “도둑이 도시를 더 잘 이용”한다고 말한다. 도둑들은 규칙을 어기고 재물을 훔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깊숙한 곳에 숨겨진 공간적 가능성의 우주”를 펼쳐놓는다.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열림원 / 352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