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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잡다 (세상을 바꾼 수술, 그 매혹의 역사)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8-09-03 08:35:05
  • 수정 2018-09-03 08: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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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태양왕’ 프랑스 루이 14세(1638~1715)는 온 국민이 알도록 떠들썩하게 치루 수술을 받았다. 1686년 초 갑자기 생긴 치루로 고통받던 루이 14세는 그해 말 베르사유 궁전에서 아내와 아들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리의 손을 붙잡은 채 수술을 받은 것. 개인용 좌식 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며 찾아온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참모 조언을 듣기도 했던 루이 14세는 공개적인 항문 수술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을 집도한 외과 의사는 75명의 일반 환자를 대상으로 연습한 후에야 왕의 수술에 임했다. 성공적으로 끝난 이 수술은 ‘위대한 수술’로 불렸는데, 수술에 임한 왕의 용감함을 칭송하는 의미에서 바지 위에다 붕대를 맨 차림을 따라 하는 일이 궁전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복강경 수술 전문의인 아르놀트 판 더 라르가 쓴 ‘메스를 잡다’에는 결석제거술, 마취, 치루, 위 절제수술 등 역사적 인물들이 겪은 질병·수술에 대한 이야기 28개가 담겼다. 루이 14세의 사례 외에도 암살범이 쏜 총에 맞아 뇌 일부가 사라진 상태로 수술실에 도착한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의사들의 긴박했던 수술 현장, 포피에 생긴 문제 때문에 7년 넘게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맺지 못한 루이 16세, 출산의 고통을 참지 못해 수술에 마취가 도입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낸 빅토리아 여왕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다양한 역사 자료와 인터뷰, 전기, 인물에 관한 기록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들은 현역 외과의인 저자의 전문지식과 경험, 유머가 더해져 한층 흥미를 더한다.

실제로 책의 많은 부분에서는 외과 의사라는 존재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한편 잘못된 지식과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오히려 환자들에게 해를 끼쳤던 의사들에 대한 자조 섞인 평가도 담겼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돈벌이를 위해 사람의 몸을 치료하려다 생긴 불상사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부분 등이 그렇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저/ 제효영 역/ 을유문화사/ 1만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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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펫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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