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제국의 품격
  • 이소영 기자
  • 등록 2018-09-26 19:29:17
  • 수정 2018-09-26 19:29:56
기사수정

   
 
뉴질랜드 마오리족을 만나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깨닫는다. 마오리족은 생각보다 자신들을 지배한 영국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사랑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한다. 제국주의 일본의 폭압적 지배를 받은 때문에 지금도 치를 떠는 한국과는 어쩐지 결이 다르다.

영국은 실제로 매력적인 제국이었다. 인류 최초로 근대적 의회민주주의를 만들었고 산업혁명을 이룩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제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두 영국에서 태동했다. 문화와 과학 또한 여느 유럽 국가 못지않다. 베이컨을 필두로 수많은 학자가 경험주의 철학을 정립했고, 아이작 뉴턴은 근대 물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영국에 조금씩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영국은 어떤 학자라도 연구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대상이다.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평생 영국사를 연구한 석학이다.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졌지만, 영국사를 박 교수처럼 실증적 증거에 따라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박 교수가 최근 '제국의 품격'을 펴내면서 평생 연구한 업적을 일목요연하게 담았다.

박 교수가 일반 대중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던 저서 '제국주의 : 신화와 현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의 후속작이다. 전작은 학술적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에 펴낸 '제국의 품격'은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울 만큼 쉽게 썼다.

제국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영(英)제국의 구체적 역사를 다뤄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물론 평소 역사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제국 역사가 우리에게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박 교수가 인도를 서술한 제6장은 주목을 끈다. 박 교수는 마하트마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를 비교하며 제국주의에 대처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박 교수가 설명하는 간디는 다소 맥이 빠지는 고전주의자다. 물레를 돌려 옷감을 짜면서 영국 방적기를 거부하는 태도는 현대인 입장에서 다소 답답하다. 간디가 이상적으로 여긴 세상은 고대 인도였고, 영국이 전수한 근대적 유산을 거부했다. 인도 고유의 정신을 파괴한다면서. 반면 네루는 영국에서 유학한 지식인으로 영국 근대 문명을 수용한다. 영국 특유의 자유주의 기풍은 인도 또한 따라야 할 지향점이라고 봤다.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만 해도 그렇다. 영국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혐오했다. 만약 영국이 더 오래 머물며 카스트 제도를 없앴다면 지금 인도는 더욱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박지향 지음/ 21세기북스/ 2만5000원

0
마이펫뉴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