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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카페에서 경영을 찾다
  • 이소영 기자
  • 등록 2018-10-29 13:07:45
  • 수정 2018-10-29 1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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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신의 물방울이라면, 커피는 인간의 물방울일까. 일본 소읍의 한 허름한 다방이 스타벅스마저 제칠 정도로 지역 랜드마크로 우뚝 서게 된 50년간의 일대기는 한 인간이 무수히 흘렸을 집념의 땀방울 앞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바로 일본의 사자(SAZA) 커피 얘기다.

극장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한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아늑한 등받이와 스크린 대신 그를 매료시킨 건 커피의 참을 수 없는 향이었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나온 그는 1969년 극장을 허문 자리에 카페를 차렸다.

좌우 일곱 평에 좌석은 고작 열다섯 석짜리 시골 카페였다. 블렌딩, 로스팅, 추출이 온전히 그의 노동으로 주어졌다. 땀 흘린 결과 시골 카페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입소문을 탔고, 이바라키현의 명소로 거듭났다. 도쿄로도 진출한 사자 커피는 일본 전역에 지점이 12개로 불어났다.

백발의 창업주 스즈키 요시오 회장이 반백 년 시간을 압축하며 남긴 혼신의 한마디는 이렇다. "커피를 팔겠다는 의식이 앞서면 손님은 도망가 버립니다. 커피를 즐기자고 마음을 먹을 때 손님이 모이죠."

사자 커피 맛의 또 다른 비결은 원두 경매 참여였다. 공룡 프랜차이즈가 농장과 독점 계약을 맺은 뒤 싸게 생두를 공급받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 일례로 지난해 사자커피는 '파나마 게이샤(Geisha)'라는 이름의 커피 생두를 파운드당 601달러에 낙찰받았다. 커피 생두 가격으로는 전 세계 경매 사상 최고액이었다. 파나마 게이샤는 사자커피 본점에서 한 잔당 3000엔에 팔렸다. 그 비싼 걸 누가 마시느냐는 우문과 달리 매일 꾸준히 판매된단다. 물론 사자의 모든 커피가 혀를 내두를 만한 가격은 아니다. 저렴하게는 400엔부터 있다고.

두툼한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시골 카페가 걸어온 길을 손으로 더듬다 보면 남미로 떠난 커피 투어 현장, 1년간 1만잔이 팔린 이즈라 커피의 개발사, 블루마운틴을 뛰어넘은 에스메랄다 농장의 원두 등 사자커피가 숨겨뒀던 비화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특히 일본 카페의 흥망성쇠를 2007년부터 취재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다카이 나오유키가 카페 경영에 관한 넓고 깊은 지식도 함께 전한다. 3년을 넘기지 못할 만큼 포화상태에 이른 대한민국의 카페 사장님들에게 경영의 힌트를 줄 수도 있겠다. 사자커피가 50년간 수없이 변하고도 결코 변치 않으려 했던 가치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한 꽃향기와 과일 향을 머금은 커피가 커피 마니아의 목울대를 자극하는 책. 한 잔의 카페인을 조붓한 커피잔에 담아내려 했던 한 일본인의 집념을 생각한다면 그의 땀이 서린 한 잔의 커피는 어쩌면 인간의 눈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카이 나오유키 저/ 나지윤 옮김/ 길벗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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