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다른 도살장에서 사용하는 쇠꼬챙이를 제출하면 저희가 감정을 할 수 있습니다.”(검사)
“왜 피고인에게 요구하죠?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는데 검사님이 해야죠.”(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
지난달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에서는 ‘쇠꼬챙이’ 공방이 벌어졌다.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주둥이에 대 감전시키는 방법(전살법)으로 개를 도살한 농장주 이모씨의 파기환송심 재판이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정이 꽉 찰 정도로 동물보호단체와 육견업계 양쪽에서 주시하는 사건이지만 대법원이 사건을 내려 보낸 지 4개월째 공전만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초기부터 논쟁적이었다. 동물보호법은 ‘누구든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씨 측은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동물을 죽일 때 전살법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은 법 대상이 되는 가축으로 소, 말, 양, 돼지, 닭, 오리, 사슴, 토끼, 당나귀 등을 명시했지만, 개는 빠져 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은 “개가 식용으로 이용되는 우리나라 상황을 볼 때 가축에 개도 포함된다”면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9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법원은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 동물에 대한 시대와 사회의 인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권의 승리” 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문제는 ‘쇠꼬챙이’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쇠꼬챙이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 개가 감전 후 기절하거나 죽는 데 소요되는 시간, 도축 장소 환경, 개에게 나타날 증상을 심리해야 한다”고 했다. 쇠꼬챙이가 얼마나 잔인한 도구인지 실제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이씨가 개를 도살할 당시 사용했던 쇠꼬챙이를 이씨 본인도, 검찰도 갖고 있지 않았다. 쇠꼬챙이 사진만 있었다. 검찰은 파기환송심에 와서야 “쇠꼬챙이가 압수된 줄 알았는데 안돼 있다”고 했고, 이씨는 농장을 처분해버렸다고 했다. 급기야 지난 17일 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기억을 살려서 쇠꼬챙이를 하나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씨 측은 “그걸 피고인이 어떻게 만드냐”며 난색을 표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에 다른 농장 사건도 많이 있지 않느냐. 그런 사건들에서 사용된 유사 쇠꼬챙이를 받아보라”고 했다. 검찰은 다른 돼지 도축 시설을 현장 검증하자고도 했지만 김 부장판사가 “도축 실상이 어떤지는 참고사항은 될 수 있어도 유무죄 판단의 근거는 아니다”라고 해 이날 재판도 진전 없이 끝났다.
전기 도살로 개가 겪는 고통은 수의사 진술 등 다른 자료로도 입증 가능한데 재판 초점이 지나치게 쇠꼬챙이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판결 때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는 특정인이나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살인 도구 없는 살인사건처럼 희한한 상황이다. 동물권 관련해 중요 사건인데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