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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세계사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9-03-14 07:29:53
  • 수정 2019-03-14 07: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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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지폐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위인 1명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런데 중앙아프리카 국가 부룬디의 지폐에는 2명의 위인이 나란히 들어 있다. 후투족 출신 첫 민간 대통령인 은다다예 전 대통령과 투치족 출신 르와가소르 왕자의 초상화가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 독특한 지폐 문양에는 르완다 내전으로 이어졌던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이란 부룬디의 아픈 역사가 있다. 은다다예 전 대통령은 두 민족 간 화해를 위해 힘썼으나 취임 4개월 만에 암살당했다. 부룬디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95년 은다다예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인쇄한 지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이후 정권이 다시 투치족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은다다예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지폐에서 삭제되고 전통조각 도안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다가 2002년 후투족과 투치족은 마침내 휴전에 동의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는데, 현재 은다다예 전 대통령과 르와가소르 왕자가 나란히 등장한 지폐는 두 민족의 진정한 화해 가능성과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유명한 대중 인문학자이자 미학자인 저자는 지폐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예술이자 시대의 기억이라고 이야기한다. 지폐의 도안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며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폐는 한 나라의 정체성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도구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 비전과 이상이 오롯이 담긴, 한 국가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다.

아쉬운 것은 한국 지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 대신 북한 지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눈길을 끈다. 저자는 1992년 북한이 발행한 50원 지폐의 주체사상탑, 100원 지폐의 김일성 초상 등을 소개하며 “북한의 김 씨 왕조는 시공을 착각해 절대왕정을 부활시킨 독재자였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시 한 번 지폐가 단순한 돈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셰저칭 저/ 마음서재/ 328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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