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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가까이에서 보며 한 번이라도 이 같은 의문을 품어봤다면, 이 책은 의문을 푸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영장류학자로 지난 40년 동안 동물 연구의 최일선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이 책은 오랜 연구를 통해 확보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랑, 미움,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기쁨, 혐오, 공감 등의 감정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밝힌다.
저자는 지난 2016년 5월 11일 유튜브에 공개된 한 동영상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영상엔 네덜란드 아른험 소재 뷔르허르스동물원에서 죽어가던 59세 침팬지 ‘마마’가 40년 동안 알고 지낸 생물학자 얀 판 호프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바닥에 누워 있던 ‘마마’는 오랜 친구를 알아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이어 ‘마마’는 호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긴 팔로 포옹하며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와 목 뒤쪽을 두드린다. 이는 침팬지가 새끼를 달래고 위로할 때 보이는 행동이다. ‘마마’의 행동은 마치 가족에게 자기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저자는 유인원과 인간의 행동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전제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는 동물의 감정이 인간보다 단순하다고 여겨온 우리의 생각을 하나하나 부순다. 암컷 침팬지가 새끼를 낳자, 다른 암컷 침팬지들이 기쁘다는 듯이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주인이 다리가 부러져 절뚝거리자 개도 주인을 따라 다리를 절뚝이고, 어떤 코끼리는 눈이 먼 동료 코끼리를 위해 맹도견 역할을 자청한다. 짝이 사라진 까마귀가 며칠 동안 울다가 지쳐서 죽는가 하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프레리들쥐는 짝을 잃은 뒤 의욕을 잃고 위험 앞에서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애도한다. 보노보는 먹이를 발견했을 때 동료가 보이면 혼자 먹을 수 있는데도 불러서 같이 먹는다. 이렇게 동물들은 종종 인간 이상으로 섬세한 감정을 보여준다.
동물들이 보여주는 강렬한 권력 의지와 치열한 정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의심하게 한다. 침팬지 무리에선 가장 힘이 센 ‘알파 수컷’이 최고 권력자지만, 경쟁자가 많아 함부로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알파 수컷’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자들과 합종연횡을 벌인다. 연합에 균열이 생기면 다른 경쟁자가 끼어들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다툼이 격화하면 중재자가 나서서 화해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지간한 정치 드라마 이상으로 긴장감이 넘친다. 이 같은 침팬지의 행동은 이들이 서로의 관계와 권력 구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동물이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우리의 생각도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침팬지는 사냥에 성공해 고기를 얻으면, 아무리 높은 서열을 가진 침팬지라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가 고기를 얻어먹는다. 인간이 갈등을 피하고자 미소를 짓듯이, 침팬지도 갈등 상황이 오면 이를 가능한 한 피하고자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침팬지 사회는 마치 법과 질서로 유지되는 인간 사회와 닮았다. 아프리카 회색앵무새는 기다렸다가 더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다면, 바로 앞에 먹이를 두고도 외면한 채 차분히 기다린다. 보노보의 사례는 극적이다. 보노보의 경우 서열이 높은 녀석과 낮은 녀석이 싸우다가 낮은 녀석이 다치면, 높은 녀석이 먼저 다가와 한참 동안 낮은 녀석의 상처를 핥아주며 위로한다. 이쯤이면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책은 여러 동물의 사례를 통해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진화의 무기가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동물의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올바로 파악하고,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이 인간처럼 높은 수준의 감정을 가졌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의 감정이 소중하듯이, 지구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의 감정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니 말이다.
프란스 드 발 저/ 이충호 역/ 세종서적/ 468쪽/ 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