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하트에 관한 20가지 이야기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9-11-13 17:55:32
  • 수정 2019-11-13 17:56:16
기사수정
   
 

옥스퍼드의 보들리 도서관에는 중세의 그림책 걸작인 ‘알렉산드로스 이야기’ 필사본이 있다. 필사본 안에 눈길을 끄는 삽화가 하나 있다. 왼편에서 여인이 심장을 들고 있는데 맞은편 남자에게 받은 것으로 설정돼 있다. 그녀는 그의 심장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는 가슴에 손을 얹어 심장이 있던 자리를 가리킨다. 현대의 하트 모양을 닮은 그 심장이야말로 세속적 사랑을 상징하는 최초의 확실한 하트 아이콘이다.

책은 하트(심장, 가슴, 마음)가 인류(특히 서양)의 감정, 특히 사랑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문화와 역사를 통해 살펴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하트 모양의 심장과 사랑을 연결짓는 역사는 유구하다. 심장을 영혼의 보금자리로 여긴 고대 이집트 시기를 거쳐 본격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하트 문화가 선보인다. 14세기에 비로소 대칭형 심장 모양의 ‘하트 아이콘’이 사랑과 직접 연관된 형태로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 화가들의 집단적인 발명을 통해 역사에 등장한다. 그러나 르네상스기를 거치는 중에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며 심장이 아닌 뇌가 인간의 감정과 사랑을 통제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랑’으로서의 하트의 상징성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하트 아이콘이 부활하게 된 것은 18세기 자본주의 영향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대중문화가 출현하고, 이 과정에서 대중은 적극적으로 지금까지의 ‘하트’ 문화를 전면화한다. 하트의 우위 속에 큐피드와의 화해가 이뤄지고,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사랑이 으뜸가는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과정에는 자본주의적 상품 판매(카드부터 각종 선물까지)도 한몫했다.

현대는 말 그대로 하트의 전성시대다. 하트 이모티콘, 사랑 노래, 사랑 영화, 사랑 동영상 등이 넘쳐나고 있다. 황금만능주의 속 사랑의 가치가 ‘하트 이모티콘’으로 이처럼 명맥을 이어가는 사실에 대해 저자는 안도한다.

“심장은 한낱 은유일지 모르지만, 효과가 훌륭하다. 내가 심장의 은유에 매혹되는 것은 인간 본성의 가장 좋은 부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사랑을 상징하는 심장이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것을 보면 증오로 갈기갈기 찢긴 세상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디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를 일깨워 주길.”

메릴린 옐롬 저/ 노승영 역/ 시대의 창/1만6800원

0
마이펫뉴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