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책은 저자의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관세음보살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관음의 성(性)은 모호하다. 인도에서는 남성이었다가 중국에서 여성으로 변신했다. 일본에서도 관음은 여성적인 모습이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관음이 때로는 남성과 여성, 때로는 중성과 양성을 오간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관음은 왜 다른 신과는 다르게 이런 모호한 성 변화과정을 거쳐온 것일까. 이 책은 저자의 이런 자문(自問)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적 신성(神性)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신학’을 연구해 오고 있는 학자다.
저자는 역사를 뒤지고 선행 연구를 살피면서 콧수염을 가진 관음상이 동아시아 각국에서 어떻게 여성적 이미지로 구축됐는지를 들여다본다.
수행하던 공주가 자신을 죽이려던 아버지의 병 치료를 위해 두 눈을 빼고 두 손을 잘라 바쳤다는 1000년 전, 중국의 묘선 공주 설화가 관음 신앙과 겹쳐지게 된 과정과 일본에서 관음에 모성(母性)이 투영되는 과정을 살핀다. 나아가 미국 등 서구 국가의 관음 신앙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관음은 동아시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여신 관음이다. 미국에서 관음은 종교를 넘어선 보편적인 여성적 신성으로 확장됐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책의 본론은 물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여신 신앙에 대한 것이다. 신라의 여신 서술성모와 대가야의 여신 정견모주 얘기부터 시작해 고구려 여신 유화와 백제 설화에 등장하는 개양할미에 이르기까지 고대국가의 여신 이야기와 함께 토착 신앙 속의 여신이 어떻게 초기 불교와 만나서 결합됐는지를 여러 설화와 기록을 뒤져 보여준다. 저자가 강조하는 책의 결론은 젠더를 초월한 거의 유일한 존재로서의 관음의 가치다.
이런 점에서 관음은 서양 남성 유일신의 이미지에 맞서 서구 신학계가 탐구 중인 대안적 신성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석굴암에 정교하게 조각된 불보살과 나한들이 월인석보에 한글로 실린 ‘안락국태자경’의 내용을 구현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추론은 급기야 석굴암 본존불의 모델이 원효이고, 본존불 뒤편의 십일면관음은 요석공주라는 데까지 이어진다.
서천국의 사라수 대왕과 관음보살로 성화(聖化)된 왕비 ‘원앙부인’의 수행과 죽음, 그리고 환생 등의 이야기를 담은 안락국태자경은 불경, 사찰의 연기설화, 소설, 무가, 그림 등으로 전승돼온 신화적 서사물.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징을 저자가 석굴암의 구조나 배치와 연결지으며 추론을 통해 해독해가는 과정이 마치 고고학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처럼 흥미롭다.
김신명숙 지음/ 이프북스/ 335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