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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시대의 탄생
  • 박서현 기자
  • 등록 2020-03-16 18:43:20
  • 수정 2020-03-16 18: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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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1년 야간 통행금지 문제가 논쟁의 장으로 들어왔다. 치안을 이유로 수십 년간 시행한 통행금지를 이제는 완전히 폐지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군부는 결국 이듬해 1월 5일 자정부로 통행금지를 해제했다.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사람들이 그간 잃어버린 4시간이 회복된 것이다.

이른바 '24시간 시대'가 막을 올리면서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심야 시간을 즐기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을까.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1980년대 사회적 시간의 개발과 재구성에 관한 논문을 제출해 박사학위를 받은 김학선 씨는 신간 '24시간 시대의 탄생'에서 "통행금지 해제 이후 심야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나 '침묵의 시간'이 아닌 '노동의 시간'이 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통계를 인용해 직업이 있는 사람의 평균 근무 시간이 1981년에는 7.02시간이었으나 1987년에는 오히려 7.40시간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자유시간은 1981년 3.33시간에서 3.25시간으로 줄었다고 설명한다.

늘어나는 수출 물량을 맞추려고 공장은 24시간 3교대 방식으로 운영했고, 학교는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을 명목으로 학습 시간을 늘렸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러한 사실은 1980년대 의약품 판매 순위에서도 확인된다. 1∼3위가 박카스 디, 원비 디, 우루사 같은 피로해소제였다.

저자는 "신군부 정권이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통금을 철폐하기 전에는 심야 시간이 미개척지와 같았다"며 "통금 해제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심야 시간을 새로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자원으로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해 분투했다"고 분석한다.

이어 "성공주의와 성과주의 속에서 남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낮과 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 없이 노동하거나 경쟁하려는 시간 의식이 자리 잡았다"고 논한다.

1980년대에는 통금 제도 폐지 외에도 다양한 시간 정책이 추진됐다. 한국방송공사(KBS)는 1981년부터 2년에 한 차례씩 국민생활시간조사를 했고, 올림픽과 맞물려 서머타임제가 시행됐다. 또 법정 공휴일도 대폭 늘어났다. 설날이 사흘 연휴로 지정됐고, 추석 휴일도 하루에서 사흘로 증가했다.

저자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시간을 규율한 1970년대의 시간성은 마감되고, 사회적 시간을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1980년대의 시간성이 새롭게 만들어졌다"면서 "1980년대 시간성은 1990년대 기업의 시간경영 담론과 개인의 시간계발 담론을 생성했고, 오늘날에도 이는 유효하다"고 결론짓는다.

김학선 저/ 창비/ 31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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