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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 이소영 기자
  • 등록 2020-05-21 07:20:45
  • 수정 2020-05-21 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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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빙하기도 버텼고, 운석 충돌로 인한 불구덩이도 견뎠다. 하지만 '폭군'의 폭정에는 덧없이 무너졌다. 폭군은 다름 아닌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 현생 인류가 지혜의 빛을 발할 때 지구 생명체는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지난 40년간 스러져간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비중은 58%에 달한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전 속도보다 1000배나 빠르다. 그야말로 '파괴의 시대'.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이제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명명한다. 인류가 등장한 이전과 이후로 지구 환경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의미다. 인류세는 지구가 맞이할 마지막 시대가 될까.

신작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은 인류세를 맞이한 지구의 상처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는 책이다. 세계적인 과학자 사이먼 L 루이스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교수, 같은 대학에서 시스템 과학을 가르치는 마크 A 매슬린 교수가 '병자' 지구를 면밀히 진단한다.

수렵채집, 농업혁명,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등 인류의 모든 축복은 역설적으로 지구엔 '저주' 그 자체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무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들은 위협이 되는 몸집 큰 포유류를 차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지혜로운 인간의 이동 경로는 거대 동물의 멸종 경로와 똑 닮아 있다.

농업혁명은 동물의 고난을 식물의 수난으로 확장시켰다. 숲을 대량으로 불태워 농경지로 개간했기 때문이다. 대기 온난화의 시작이다. 이어진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류는 전 지구를 괴롭히는 단계로 진입한다. 극심한 소비주의로 온난화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사라지는 생명체는 더욱 많아졌다.

책이 지니는 가치는 '종말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들은 인류라는 이름의 폭군이 '성군'이 될 방안을 제시한다. 그 시작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조건 없이 지급되는 임금이 인류를 환경 파괴적인 자본의 욕구로부터 격리할 수 있다.

다음 전략은 보다 급진적이다. 화합하지 못하는 인류와 자연의 분리를 조언한다. 지구 절반을 재(再)야생화해,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고언(苦言)이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만 생태계가 다시 그 다양성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은 어쩌면 자연과의 '격리'라는 단순한 해결책뿐일지 모른다. 인간은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해 왔다.

사이먼 L 루이스·마크 A 매슬린 저/ 김아림 역/ 세종서적/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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