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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 가장 중요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요하네스 케플러는 생전 과학자보다는 점성술사로 더 유명했다. 그는 별점을 치며 늘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곤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찾는 고객들을 "멍텅구리들"이라고 경멸했고, 점성학을 "얼빠지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나의 목표는 우주의 기계장치가 신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시계의 기계장치와 비슷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꿈은 원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행성의 운동에 관한 3가지 법칙인 '케플러 법칙'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경멸하던 점성학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다. 결국 신성로마제국 황실 점성술사로까지 일했으니까 말이다.
'진화의 오리진',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 등 대중 친화적인 과학서를 쓴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존 그리빈의 '과학을 만든 사람들'(진선북스)은 르네상스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중심으로 500년 과학사를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르네 데카르트,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유명과학자부터 과학 전공자들만 알만한 베살리우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같은 인물까지 과학사에서 명멸했던 인물들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술했다.
책은 과학의 원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기술돼 있지만, 과학자들의 일생과 일화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엮어가 과학에 대한 문외한이라도 즐길 수 있을 만하다. 예컨대 평생 관절통에 신음하고, 돈 벌기를 염원했던 갈릴레이의 모습은 분명 낯설지만, 일반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친숙하다.
저자가 이처럼 인물 중심으로 과학사를 서술한 이유는 누구도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500년 근대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뉴턴조차 직전 선배들인 갈릴레이, 데카르트의 연구 결과에 의존했다. 평생 별의 위치를 추적했던 튀코 브라헤의 방대한 데이터가 없었다면 케플러도 행성의 운행 법칙을 만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 과학자의 업적이 다른 과학자의 업적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 세대의 과학자들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과학이 진보하는 것이 아닌 혁명적 변화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주장한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 구조의 세계관을 배격한다. 과학발전은 "본질적으로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자가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우주에 대한 어떠한 묘사든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대신하려면 일반상대성이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그 이론이 성공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뉴턴의 중력이론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밖에도 경쟁자를 역사책에서 지워 버린 까다로운 성격의 뉴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여러 스캔들을 남긴 핼리, 물이 새는 창고를 연구실로 써야만 해던 마리 퀴리, 빙하시대가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동료들을 산 위로 끌고 올라간 루이 아가시까지 과학 발전에 헌신한 다양한 인물들의 열전을 수록했다.
저자는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을 빌려 일반인들에게 과학 이야기를 설명하려는 이유를 이같이 말한다.
"현대 세계에서 과학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지적으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누구도 편안할 수 없고, 현대 세계가 지니는 문제의 성격이 무엇인지 -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존 그리빈 저/ 진선북스/ 권루시안 역/ 976쪽/ 2만4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