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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식민통치가 인도에 근대적 경제체제와 정치적 통합, 민주주의를 가져다줬다는 영국 식민지배 옹호론에 치열하게 맞선다.
이 같은 식민지배 옹호론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이 없었다면 한국은 근대화되지 못했을 것이란 논리로 발전한다. 이 같은 논리는 해방 후의 개발독재를 합리화하는 데도 사용된다.
책은 인도의 통일이 영국 식민통치의 성과라는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정치적 분열은 인도를 식민지배의 희생물로 만든 주된 원인이지만, 영국이 인도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아전인수라는 것이다.
영국이 인도 식민지배 200년 동안 일관되게 견지한 통치 전략은 '분열시켜 지배한다'였다. 이에 따라 종교, 인종, 지역 간 차별을 강화하고 적대감을 조장했으며, 그럴수록 지배에 유리했고 영국의 이익에 기여했다.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타고난 천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과거 카스트는 확립된 사회제도가 아니었다. 경계는 느슨하고 유동적이었다. 카스트가 절대적인 신분제도로 굳어진 건 영국이 식민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삼으면서다.
과거 수드라(노예)는 마을을 떠나면 본인의 카스트가 따라오지 않았지만, 식민지배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평생 수드라로 살 수밖에 없게 됐다. 군대도 철저하게 카스트를 기초로 편성됐다.
전에는 없던 카스트 간 경쟁이 생겨나고 격화됐다. 저자는 "인도 사람들이 19세기 후반보다 더 노골적으로 카스트를 의식했던 적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카스트는 200년의 식민지배를 거치는 동안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변했고 사회 전반에 깊은 분열의 골을 남겼다.
계급뿐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종교 간, 지역 간의 차이도 강조되고 분열이 조장됐다. 과거 인도는 서로 다른 종교 집단 간 배타적이지 않았고 결혼, 축제, 음식, 심지어 신앙에서도 비슷한 사회적, 문화적 풍습을 공유했다.
하지만 영국의 집요한 분열 정책으로 인한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독립 후 인도를 3개국(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으로 나뉘게 했으며, 이후 네 번의 전쟁과 핵 무장, 테러를 낳았다.
영국이 인도에 스스로는 성취하지 못했을 민주주의를 가져다줬다는 주장은, 영어, 차(茶), 크리켓이란 문명의 혜택이 식민지배의 보상이라는 주장만큼 어처구니없다고 책은 지적한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 보복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역사 그 자체가 보복이 된다."
어쩌면 우리에겐 다소 물러 보일지 모를 저자의 말이, 그가 누구도 가지 않았던 비폭력주의의 길을 갔던 마하트마 간디의 정치적 후손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시 타루트 지음/ 김성웅 옮김/ 젤리판다/ 456쪽/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