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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설명 강박’을 비판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여성주의 용어를 탄생시킨 미국 출신 페미니스트이자 저술가, 역사가인 솔닛은 가장 보편적인 행위인 걷기를 통해 그 역사와 철학, 문학은 물론 민주주의, 저항, 여성 등 다양한 주제를 꿰어낸다.
“인간의 무의식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라는 언급에서는 그의 깊은 인문적 ‘내공’을 엿보게 한다. 그는 “보행은 몸과 마음과 세상이 한편이 된 상태”이며 “걸을 때 우리는 육체와 세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육체와 세상 속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산시간을 최대화하고 이동시간을 최소화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걷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눈총을 받는다. 최단거리를 확정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통과하는 방법이 대세가 되고, 전자통신이 물리적 이동을 아예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었다. 걷기의 위기는 공적 공간의 위기이자 아날로그의 위기, 사변적 사유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다. 솔닛은 “누구를 걷게 할 것인가, 어떻게 걷게 할 것인가를 통제하려는 노력을 보면, 보행이 아직 전복적 행동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서 “길들여지지 않은 장소와 공공장소라는 자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역설한다. 책은 2000년 초에 나온 것으로, 이번 주 저자의 한국 방문을 맞아 재출간됐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반비/ 512쪽/ 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