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들도 생태계 기여”
  • 편집부
  • 등록 2013-06-27 08:19:43
  • 수정 2013-06-27 08:24:10
기사수정
  • 김은주 수의사 ‘2013 생물다양성의 날’ 환경부장관상 수상

“삑~삑~” 요란한 신호음과 하께 수의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지난 21일, 전북야생동물센터 수술실에는 로드킬(roadkill, 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당한 어린 고라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커다란 눈은 초점을 잃은 지 오래다. 고라니가 놀랄까봐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조심스럽게 수술대 위에 눕혔다.

야생동물 수술은 ‘시간’이 관건이다. 마취가 동물 건강에 영향을 덜 주게 하려면 수술을 최단 시간에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김은주 수의사는 상처 부위를 살핀 뒤 신속히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날씨가 화창해지면서 먹이를 찾기 위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는 야생동물이 늘어나면서 로드킬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로드킬 사고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분별한 개발로 동물의 서식지가 훼손되면서 먹이를 찾으려는 동물들이 주택가나 인근 도로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매년 구조되는 수십여 마리의 야생동물을 치료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앞장서고 있는 김은주 수의사가 치료를 받고 호전된 큰소쩍새를 안고 있다.
매년 구조되는 수십여 마리의 야생동물을 치료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앞장서고 있는 김은주 수의사(전북야생동물구조센터)는 생물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 생물다양성의 날(5월 22일)’ 기념식에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009년 야생동물센터에서 수의과 실습을 하던 김 수의사는 사명감에 이 길을 택했다. 그는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반면, 야생동물들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며 “돌봐줘야 할 동물들이 열악한 시스템에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수의사는 근무 환경이 열악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어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기피하는 영역이다. 굳이 이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누군가 열정을 갖고 길을 닦아 나가면 비슷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수의사는 “물론 불타는 사명감과 마음만 갖고 서는 힘든 직업”이라며 “야생에서 생존경쟁을 하던 동물들이라 사람들이 다가가면 아픈 상황 속에서도 이빨을 먼저 드러내 항상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그래서 1~2년차 초보 수의사 시절에는 손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머리를 부딪혀 상처를 입은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김은주 수의사와 동료들.
 
그가 일하는 전북야생동물구조센터는 병원과 동물원을 합쳐 놓은 구조이지만 분위기는 응급실 분위기였다. 그는 야생동물센터를 전쟁터에 비유하며 “이곳까지 올 정도면 죽어가는 동물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야생동물도 사람처럼 자연을 이루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시설물 때문에 다친 것인데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구하는 것 역시 결국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하는 야생동물 중 하나가 바로 천연기념물 고라니다. 고라니는 중국 양쯔강 하류 지역과 한반도 지역에서만 분포하는,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개체다. 멸종위기 1급의 동물인 수달과 산양, 멸종위기 2급인 하늘다람쥐, 수리부엉이 등도 로드킬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김 수의사는 특히, 뱃속에 생명을 잉태한 고라니가 로드킬을 당해 안타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수술대를 거친 야생동물 가운데에는 낚시꾼이 버린 납에 중독된 너구리부터 밀렵꾼에게 쫓겨 간신히 도망친 수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수달은 10시간 가까운 대수술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시력을 모두 잃고 말았다. 이처럼 야생동물센터에 오는 야생동물 10마리 중 4마리는 교통사고나 밀렵, 총상 등에 의해 실려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강을 되찾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고작 20~30%정도에 불과한 형편이다.

김 수의사는 “우리가 정성을 다해 지켜야 할 소중한 생명이자,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한없이 메어진다.”며 “먹이를 주며 정이 든 야생동물이 자연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볼 때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각종 사고로부터 야생동물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야생동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야생동물센터와 함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구의 자연과 생태계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특히 야생동물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전한 기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전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실습을 나온 후배들을 격려하는 김은주 수의사의 모습.
김 수의사는 “여름을 맞아 번식을 위해 찾아오는 철새들을 보호해주는 것만으로도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며 “보존이 안 된 곳에서 번식을 하면 조류 질병으로 이어져 생태계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인류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로 위에 내몰린 동물은 물론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로드킬 예방책과 안전시설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고층 건물과 투명한 건축 구조물 역시 야생 조류들의 사고 증가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유리창에 장애물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작은 ‘선’이나 ‘버드세이버(방음벽에 붙이는 새 모양의 스티커)’를 부착하면 조류들이 창문에 부딪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리창에 장애물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작은 ‘선’이나 ‘버드세이버(방음벽에 붙이는 새 모양의 스티커)’를 부착하면 조류들이 창문에 부딪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버드세이버 부착 후 조류 충동 사고가 9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끝으로 그는 “지금은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야생 생물자원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우리의 작은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며 “일반 가정에서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은 경우에 간혹 야산이나 공토 등에 묻거나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배출하는 일도 있는데, 각종 전염병의 발원지가 될 소지가 있으니 가까운 동물병원이나 동물장묘업체에 의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길에서 동물 사체를 발견했다면 전화 ‘120’ 또는 ‘128’번으로 신고하면 된다. 신고를 받은 ‘동물사체 회수기동반’이 현장에 출동하면 의료폐기물 전용용기 및 위생 비닐에 사체를 담아 냉동고에 보관한 뒤 지정 폐기물 수거업체로 보내고 사체는 거기서 소각 처리하고 있다. [출처=다정다감]
 

0
마이펫뉴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