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애완동물 기르기는 주로 상류층에서 이뤄진 호사스런 취미였습니다.
고대 아테네 및 로마 귀족들은 사치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애완동물들을 키웠습니다.
로마에서 부유한 이방인들이 개나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끌어안고 애지중지하는 것을 본 카이사르는 “그 나라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도 않는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물에게 과도하게 애정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한 질책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당시 한 귀족(알키비아데스)은 개 한 마리를 70미니나 주고 산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인간 노에의 20배가 넘는 액수였습니다. 애완동물들은 일반적으로 형태의 기괴함과 불완전에 비례하여 가치가 높게 평가 되었습니다. 색다르고 이국적인 동물일수록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색다르고 이국적인 동물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정복 군주들의 ‘동물원 만들기’에 나타났습니다. 그 그릇된 욕망이 동물원의 기원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동물원을 만들어 표범, 사자, 곰, 원숭이 등을 길렀는데, 그것은 군주의 권력과 영향력이 아주 먼 곳까지 미쳤음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근대 서구 제국주의 시대에도 동물원에 갇힌 이국적인 동물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엄청난 부와 국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식미지 국가들에게 동물원은 굴욕적인 외교관계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군주들이 과시용으로만 애완동물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주라는 지위가 부여하는 과도한 책임과 부담감, 그리고 권력투쟁은 군주들을 애완동물에 집착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중국 한나라의 영제(靈帝)는 자신의 개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궁궐 안의 모든 개에게 대신의 직위를 하사했습니다. 직위를 받은 개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먹이, 호사스런 깔게, 개별 경호원 등이 주어졌습니다.
또 17세기 일본 쇼군 쓰나요시는 어디에나 개를 데리고 다녔으며, 모든 개에게 최대한 정중한 말투를 사용하라는 법령을 제정하여 ‘개 장군’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는 개를 10만 마리나 길렀고, 그 사육비용이 너무 엄청나 국가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정도였다는 것이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들 중 애완견과 보호자의 가장 눈물겨운 이야기 주인공은 스코틀랜드의 메리(Mary)여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는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처세에 역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처형되었습니다.
처형당하는 날, 그녀는 애완견을 몰래 옷자락 속에 숨기고 처형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녀가 처형된 후, 사형집행인은 그녀의 양말대님을 풀다가 옷자락 밑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움찔거리는 강아지를 발견했습니다. 강아지는 피로 범벅이 된 시체에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행인이 억지로 데려가서 씻겨야 했습니다. 한때 한 나라의 여왕이었던 여자 곁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애완견이었습니다. 아마도 메리 여왕은 애완견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었을 것입니다. (박민영, 『즐거움의 가치사전』)
이처럼 애완동물의 역사적 출발은 사람의 잘못된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반려’의 개념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반려동물은 종교 다음으로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물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