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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 김진성 기자
  • 등록 2018-09-02 19:49:57
  • 수정 2018-09-02 19: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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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소재로 한 시중의 많은 책이 교양의 무기로서의 성격에 집중한다. 그러한 책들에서 교양은 말싸움에서 남을 누를 수 있는 칼이고, 글쓰기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사치품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교양을 쌓는 일련의 흐름과 멀리 떨어져 있다.

저자에게 있어 남을 지배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은 올바른 동기가 아닌 수준을 넘어 교양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다. 그에게 교양은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세상에서 인과관계를 길어 올릴 때 쓰는 뜰채이며, 인간이 스스로의 정신적 정체성을 창조할 수 있는 조각칼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불빛이 반짝거리는 곳으로 무작정 홀릴 위험이 적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저자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 '자기 결정' '자유의 기술' 등 저서를 통해 인생과 존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그가 집필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번 '교양수업'에서 그는 인문학, 음악, 철학 등 세부 지식을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교양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함으로써 그것의 의미와 필요를 독자 스스로 성찰하게 안내한다.

다독(多讀)만으로 교양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어야 교양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양을 쌓아가는 사람은 시 한 편으로도 변화하게 됩니다. 이 점이 교양을 갖춘 시민과 교양의 뒤꽁무니를 좇는 속물의 차이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더 풍부한 표현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내가 가진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88쪽의 분량 안에 교양의 다채로운 면모를 소개한 저자의 함축적 표현은 그 자체로 교양의 필요성에 대해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페터 비에리 지음 /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펴냄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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