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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9-02-22 08:58:54
  • 수정 2019-02-22 0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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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더불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샹탈 무페의 최신 저작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함의는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하다.

무페는 신자유주의 이후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는 포스트민주주의로 전환되었다고 진단한다. 민주주의의 두 가지 축인 “대중주권”과 “평등”이 무너지고 그 대신 정치 귀족과 전문가들 사이의 합의가 정치를 대체하는 ‘탈정치화’와 ‘과두제화’가 포스트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포스트민주주의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의 번성을 수반했다. 대량 실업과 이주노동자, 난민의 유입은 하층 계급들의 불만과 공포를 자극했는데, 장 마리 르펜과 같은 극우 정치가는 ‘국민 우선’과 같은 구호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를 키웠다.

무페는 오늘날 진보정치가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파 포퓰리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정서와 요구를 정치적 쟁점으로 전환하는 능력, 엘리트인 ‘그들’과 서민인 ‘우리’ 사이에 분명한 대적 전선을 설정하는 방식, 이로써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하나의 공동의 의지로 결집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우파 정치와 보수 언론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특히 복지정책을 비롯한 진보개혁정치를 비판하기 위해 ‘대중 영합주의’라는 뜻으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외국의 용법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사용법인데, 왜냐하면 유럽이나 북미에서 포퓰리즘은 주로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미국의 트럼프 같은 (극)우파 정치를 지칭하기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포퓰리즘은 비합리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중우정치를 뜻한다.

무페가 사용하는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정치의 핵심은 주체 형성에 있으며, 주체 형성은 노동자 계급과 같이 이미 정해진 토대가 없는 가운데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치는, 우파 정치든 좌파 정치든 간에, 훨씬 더 불확실하고 범속한 조건 속에서 작동한다. 대중을 동원할 수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닌데, 이 대중은 정밀한 이론이 아니라 그럴듯한 수사와 정서에 이끌린다. 이런 조건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적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무페의 근본 물음이다.
 

샹탈 무페 저/ 이승원 역/ 문학세계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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