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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종양학회(AACR) 세미나에서 마이크를 잡은 식품의약국(FDA) 고위 관계자는 한 스타트업이 '강아지 암세포 데이터를 500마리 분량 이상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화들짝 놀랐다. 그는 마침 암 치료에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니 모두 함께 노력하자는 연설을 끝낸 참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대부분 연구자가 15~20명 사이의 환자에게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효과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 데이터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신뢰도를 쌓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FDA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 스타트업은 강아지 암세포를 연구해 궁극적으로 사람의 암을 치료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임프리메드'로 임성원·이혜련 공동창업자가 설립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 캠퍼스에 있는 스타트업 육성기관 '스타트엑스'에서 열심히 반려견의 암세포를 모으는 중이다.
이들이 하는 작업은 반려견의 암세포를 떼어낸 뒤 오랫동안(일주일 이상) 보존할 수 있는 자체 개발 기술을 통해 암세포가 살아 있는 기간 어떤 약품들이 세포 억제에 효과가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데이터로 저장하는 일. 단순히 하나의 약품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14~16가지를 200~300개 정도 조합해 암세포를 공격한다. 그 결과 암을 앓고 있는 강아지들에게 적절한 치료약물을 파악해 수의사들에게 일주일 이내에 추천해 주는 일을 한다. 보통 반려견 주인들은 암치료를 위해 병원을 매주 방문한다. 다음 방문 때 반려견에게 효과가 있는 치료제가 무엇인지 그 예측 결과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임프리메드'는 암을 앓고 있는 반려견에게 최적의 약물조합을 찾아내고 결괏값을 쌓아 나가고 있다. 생명공학 쪽에서 지난 수년간 각광받고 있는 '프리시전 메디슨(Precision Medicine)', 즉 개인 특성과 상황에 특화해 치료를 제공하는 솔루션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에게서부터 먼저.
올해 6월 250마리분 암세포 데이터를 확보했는데, 10월 말 현재 650마리분 데이터를 축적했다. 임성원 창업자는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800마리분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보다 반려견의 경우 데이터 수집이 용이하다는 점이 이런 데이터 구축의 첫 요인. 여기에 이혜련 창업자가 미국 전역 수의병원 60곳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 암세포 수집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림프종을 앓고 있는 반려견들에게 임프리메드의 약물 추천 정확도는 82%에 달한다. 신뢰도가 높은 서비스를 만들어 신뢰가 가게끔 소통하자, 암세포 샘플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600마리의 강아지 림프종 환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얻은 데이터를 통해 '각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약은 82% 정확도로, 효과가 없는 약은 80% 정확도로 예측해 준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이들은 다음 투자라운드(시리즈A)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강아지도 맞춤형 약물조합을 추천받아 치료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데, 사람은 왜 이런 서비스를 못 쓰냐"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규제 및 절차 등으로 막혔던 사람의 암세포를 확보해 특정한 한 사람을 암에서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약물배합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것이 그들의 다음 목표다.
그러나 임프리메드의 시선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임 대표는 "임프리메드가 확보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약물조합이 새로운 암 환자군에게 유용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경우 신약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프리시전 메디슨을 통한 제약 플랫폼으로 도약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