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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위상학
  • 박서현 기자
  • 등록 2020-06-26 08:12:06
  • 수정 2020-06-26 0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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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병리적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피로사회'로 전 유럽과 한국에서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저자가 그로부터 10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피로사회'의 마지막 장에 제시된 '피로는 폭력이다'라는 테제를 이어받아 전작에 전개된 사유 아래에 깔린 폭력의 논리를 담았다.

사회적 구도가 변화함에 따라 폭력의 양상도 달라진다고 지적한 저자는 오늘날의 폭력에 관해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정면 대결성에서 바이러스성으로, 노골성에서 매개성으로, 실재성에서 잠재성으로, 육체성에서 심리성으로, 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이동하며, 그리하여 폭력이 사라진다는 잘못된 인상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책은 1부에서 부정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 즉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친구와 적 사이의 이원적 긴장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거시물리적 현상으로서 폭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오늘날의 사회는 타자의 부정성, 낯선 것의 부정성에서 해방돼 가지만, 부정성의 축소를 폭력의 소멸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정성의 폭력과 나란히 적대관계나 지배관계 없이 작용하는 긍정의 폭력도 존재하는데 2부에서 다루는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긍정성의 폭력은 어떻게 보면 부정성의 폭력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불명확한 데다, 긍정성으로 인해 면역저항에 부딪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주권사회에서 근대 규율사회로, 다시 오늘날의 성과사회로, 사회가 변천하는 것과 더불어 폭력이 위상학적 변화 과정을 밟아왔으며 오늘의 폭력이 점차 내부화, 심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병철 저/ 김태환 역/ 김영사/ 232쪽/ 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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