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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의료현장에서 빚어지는 보호자와 동물병원 간 갈등은 ‘정보 격차’에서 비롯된다. 같은 질환을 두고 치료방법이 병원마다 제각각이고, 상담을 거듭할수록 진료와 비용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아 보호자들의 불만이 거세다.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문제다. 전문가들은 질환마다 필수시술을 정하는 진료항목 표준화(진료 표준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담당 부서조차 없다. 동물 의료 표준화가 수년째 헛바퀴를 도는 이유다.
최근 국민일보가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전국 동물병원 12곳의 중성화 및 슬개골 수술 견적을 비교한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일부 동물병원은 상담 첫 마디에 저렴한 비용을 제시한 뒤 상담 도중에 안전상 필수적인 사전 혈액검사, 수액 시술을 추가로 청구했다. 의료 정보가 부족한 동물 보호자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병원 측의 안내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정보 비대칭 문제의 해법으로는 진료 표준화가 제시된다. 서울대 수의과대학은 지난해 4월 농축산부 의뢰로 ‘동물병원 진료 표준화 방안 결과 보고서’를 냈다. 연구팀은 “반려동물 보호자의 혼란을 막고 진료비 부담을 줄이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나 체계적인 진료 표준화 없이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도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동물병원 표준 진료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회에는 진료 표준화 등을 골자로 한 ‘수의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25일 기준 12건 발의돼 있다. 같은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실은 28일 “4월 중 정부 입법안이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공론화의 마중물 차원에서 발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안은 진료항목 표준화와 다빈도 진료항목 비용 고지(사전고지제)의 도입을 골자로 한다.
거듭된 공론화에도 진료 표준화 도입은 실패했다. 관련 정책을 개발해야 할 정부 담당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진료비 사전고지제에 대한 수의사단체의 반발이 거센 탓이다.
수의사단체는 진료 표준화는 필요하지만 정책 인프라 구축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의료를 표준화하는 데 10여년간 투입한 예산만 100억여원인데 농식품부의 동물 의료 담당자는 단 2명이고 전담 부서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관련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계속 요청해왔다”면서 “진료 표준화에 필요한 기초 연구는 꾸준히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사전고지제는 수의사단체로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동물병원협회 관계자는 “질환의 전이 및 중증도를 예측할 수 없어 비용을 미리 공지하기 어렵다”며 “예상 진료비용을 설명할 의무는 의료법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예외조항을 두면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비용예측이 어려운 질환은 협의를 통해 정하면 된다”며 “진료 표준화와 진료비 사전고지는 병행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