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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어울림
  • 한지현 기자
  • 등록 2021-11-20 11:17:31
  • 수정 2021-11-20 11: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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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결과로 연방정부 기금을 받는 기관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 정체성, 출신국 등을 이유로 고용, 승진에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정책이 시작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노동자 고용은 물론 대학 신입생 선발에서 아예 일정 비율을 할당하여 소수자를 뽑게 하는 단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웬 특혜? 필기, 실기시험과 면접 등 객관적 평가를 통해 회사원이 된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냉정하게 돌아보니 객관적 평가는 쥐뿔. 채용에서 남녀, 출신학교에 따라 차별을 두는 오랜 관행이 있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교육 정도가 달라지며 대입이 판가름 나는 교육환경은 어떻고. 아들이어서 중고등학교에 진학했던 것은 으레 그러려니 하여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는 출발선보다 앞에서 출발해 부모의 뒷심을 받았음에도 그 결과를 당연시하는 풍토에 젖어 있었다.

정연주는 신문사 퇴직 뒤 2003년 <한국방송>(KBS) 사장이 되어 사원 선발에 출신대학, 출신지역을 고려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공기업 처음으로 실시했다. 획기적이었다. 당시 사석에서 그렇게 뽑은 지방대 출신이 훨씬 창의적이고 일을 잘 하더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이 책은 2019년 1월에 만들어진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에서 월간 <디베르시타스>(Diversitas, ‘다양성’을 뜻하는 라틴어)에 실었던 글모음이다. 다양성위원회 구성이 사립대로는 처음이고 관련 정간물 발행도 처음이라니 책의 만듦새와 각각의 글에서 당혹스러움과 절박함이 묻어난다.

2019년 현재 고려대 여학생 비율은 학부 45.7%, 대학원 41.8%. 공과대학, 이과대학이 각각 21.3%, 30.1%이니 전공별 편차가 심하다. 여성 교수 비율은 16.2%로 임계비율(특정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비율이 어느 값 이하가 되면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 대표자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경계가 되는 값을 말함. 20%설, 35%설이 있음) 이하다. 공과대학은 달랑 4%. 다행이라면 2년쯤 뒤 2021년 6월 조사 결과 여성 교수 비율이 17.2%로 2년 새 1%포인트가 늘었다는 사실.

섬처럼 존재하는 다양성위원회와 책은 동격이다. 한국사회가 차별 철폐를 넘어 다양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외침이다. 구성원 개인이 다양할수록 창의적이고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져 조직의 성공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널리 전하고 조직 내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각각의 글은 짜임새가 다르지만 뜻의 곡진함에서 다르지 않다. 예의바름으로 포장된 우리말 존대법이 기실은 반상 신분제의 잔재라는 것, 노인과 어린이를 배려하지 않는 타이포그래피의 무심함, 임상실험 대상이 남성 성인 위주여서 의약품이 여성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은 다양성을 화두로 짚어야 할 문제가 참 많음을 일깨운다.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 기획/ 동아시아/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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