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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같은 장서관 밀실에 감춰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 관련 필사본들이 화근이었다. 수행자들에게 웃음과 풍자는 해악이자 죄악이라고 여긴 호르헤 수사가 책장 귀퉁이마다 독극물을 발라놓은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은밀하게 ‘금단의 열매’를 탐했던 수도사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에코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웃음의 철학>은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지은이가 ‘서양 철학사 속 웃음의 계보학’(부제)을 탐구한 책이다. ‘웃음’의 의미와 유용성 여부는 오랜 옛날부터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이자 논쟁거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이 인간의 본성이며 동물과 달리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면 결코 하찮거나 철학적으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봤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교의 덕’ 중 하나로 “농담할 줄 알고 웃을 수 있는 능력”을 꼽았고, <시학>에선 “유쾌함의 경계를 넘지 않는 좋은 희극의 성공 비결”을 논했다.
얼음 같은 이성과 비판철학 탓에 재미라곤 없을 것 같은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인간학 강의>에서 “진지함과 위엄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 듯하다. 재치 있는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며 사랑받는다”고 썼다. 다른 저작에선 “지성은 숭고하고 위트는 아름답다”고도 했다. 그가 “(웃음은) 횡격막이 진동하는 기계적인 신체적 사건, (…) 톱질이나 승마보다 좋은 운동”이라고 한 것은 ‘칸트’답다.
데카르트는 조롱과 조소는 “증오가 섞여 있는 통쾌함”에서 나온다고 봤고, 보들레르는 웃음이 “자신의 우월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는 매우 악마적인 생각”이라고 경계했다. 쇼펜하우어는 위트와 어리석음이 폭소를 터뜨리는 이유를 “생동적인 직관과 인식하는 지성 사이의 각축”에서 찾았으며,
프로이트는 ‘긴장의 배설에 따른 쾌감’에 주목했다.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흔히 사유는 풍자와 유머보다 높이 평가된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우스운 것에 대한 의미를 전혀 모르는 사상가에 의해 내려진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만프레트 가이어 지음/ 이재성 옮김/ 글항아리/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