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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에 가까운 앞장다리하늘소의 앞다리는 압도적인 외관으로 눈길을 끌지만 적과 싸울 때 말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날아갈 때 앞다리가 걸리지 않도록 머리 너머로 넘기고 몸통을 꼿꼿이 세워 저속비행을 해야 한다. 한쪽 집게발이 전체 몸무게의 절반인 농게도 무기를 건사하는 일이 힘겹다. 집게발엔 강력한 근육세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집게발이 클수록 에너지 소모가 크고, 거대한 집게발은 먹이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
동물들이 이처럼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극한의 무기’를 장착하게 된 이유는 뭘까. 지난 20여년 동안 아프리카·호주·중남미를 누비며 쇠똥구리 연구를 해온 미국 생물학자 더글러스 엠린은 생태계에서 진행된 무기 경쟁의 비밀을 추적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을 포착한다.
그러나 거대할수록 실제 전투에 사용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대부분 농게들의 경쟁은 커다란 집게발을 깃발처럼 흔드는 선에서 정리되는데, 크기만으로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고, 자신의 자원의 절반이 투입된 값비싼 무기를 매번 휘두르는 건 미련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19세기 영국의 함대가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나라들을 제압한 것처럼, 1980년대 극한의 무기경쟁을 벌인 미국과 소련이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차마 핵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처럼, 무기경쟁은 억제력을 초래한다.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북트리거/ 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