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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타워
  • 김진성 기자
  • 등록 2019-02-24 08:15:29
  • 수정 2019-02-24 08: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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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네트워크와 위계제를 끊임없이 재발명했다. 네트워크는 이동하는 권력이자 질적인 변화였다. 인간이 마땅히 직면하게 되는 자연적 구조물이 네트워크였지만 전략적으로 뛰어난 발명품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데다 그릇된 정보가 넘실대서다. 반면, 명령과 통제의 유전자가 특징인 위계제는 권력의 효율성을 드높였다. 농업 본위의 군주정, 중앙집권화된 교회, 폐쇄적인 길드, 거대한 제국이 위계제의 전통적 외형이었다. 위계제와 네트워크는 도전과 응전을 반복했다. 광장 위의 인간은 타워를 쌓았고 타워 아래 인간은 타워를 부수며 광장을 재건설했다.

네트워크가 위계제를 무너뜨린 역사의 유명한 페이지를 보자. 바로 종교개혁이다. 구텐베르크의 활자술은 서방 기독교뿐만 아니라 소통의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인쇄기가 하나 이상인 도시는 전혀 없던 도시보다 앞서 개신교를 수용했다. "모든 신자는 사제(司祭)"라고 주장한 개혁의 네트워크는 교황과 주교의 권위에 날 없는 칼을 들이댔고 인류의 종교사는 변혁을 맞는다. 오랜 계보의 위계제는 갈가리 찢겼는데 인쇄기는 권력의 교란 수단이었다. 상업적 기회를 모색한 탐험가들도 당시 위계제에 도전했다. 영원해 보였던 권좌는 네트워크란 무형의 그물로 대체되면서 망실됐다.

무작위로 선택한 세 번째 페이지는 독일 나치즘이다. 왕이나 귀족정의 임명을 받아 권력을 집중시킨 파시즘과 달리, 독일 나치즘은 네트워크의 결정체였다. 나치의 민족사회주의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지도자의 망상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모든 계층을 움켜쥐었다. "신께서 보내주신 총통 각하"이자 "현대 대중의 영혼의 순수한 파편 한 조각"이란 수식어로 치장한 아돌프 히틀러는 종교와 결합하며 결사체의 네트워크를 일궈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나치즘은 성장 과정에서 위계제의 색채를 품었다. 나치즘 내에서 '광장의 네트워크'와 '첨탑의 위계'가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였다.

현대로 눈을 돌리자. 퍼거슨에게 구글은 방대한 '지구적 도서관', 아마존은 '전 세계적 바자(bazaar)'다. 퍼거슨은 이쯤에서 감춰둔 발톱을 드러낸다. 하루에 11억명이 접속하는 인류사상 최대 규모의 '사교 클럽' 페이스북은 "광고로 떡칠된" 플랫폼 네트워크고, 이때 "페이스북은 전통적 회사보다 일종의 정부(政府)"라던 마크 저커버그는 노출증과 관음증으로 범벅된 플랫폼 장사치로 변질된다. 마틴 루터 시절에 종이책이 그러했듯이, 스마트폰은 페이스북과 함께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허나 본질은, 더 이야기를 털어놓을수록 더 광고주에 노출된다는 것. 저커버그는 혁신가인가, 슈퍼스타인가.

'수평적 네트워크는 선(善)하고, 수직적 위계는 악(惡)하다'는 보편적 통념까지 퍼거슨은 무참히 밟아 짓뭉갠다. 논리는 세 단계다. 첫째, 네트워크 세상은 무질서하다. 둘째, 무질서 속에서 성원은 사악한 의도를 가진 거짓 정보에 감염된다. 셋째, 정치적 복잡성을 띠는 네트워크의 '바이러스'는 정치적 위계에 위협을 가한다. 퍼거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네트워크가 내부 질서를 회복하긴 어렵다고 단언한다.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21세기북스/ 4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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