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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나름의 어두운 면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속성 자체가 그런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술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험,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 등 이번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문제가 뭔가 부족한 듯한 민주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 줬다.
근자에 들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저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 데이비드 런시먼 교수는 현대 서구 민주주의가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봤다. 지구 상에는 정기적으로 선거가 치러지고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입법부와 독립적인 사법부, 자유로운 언론이 있긴 하지만 제도나 기관이 본연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속이 빈 민주주의’가 도처에 널려 있다. 이 책은 한국어판 제목처럼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세 가지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협을 분석하고 민주주의를 대신할 대안들의 장단점을 설명한다.
현대에서 민주주의를 중단시키는 국가 전복 형태의 군사쿠데타 가능성은 매우 작아졌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쿠데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유예하는 ‘행정부 쿠데타’, 선거 과정을 조작하는 ‘부정 투표’, 선거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공약성 쿠데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번에 민주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체제를 조금씩 약화시키는 ‘행정권 과용’, 선거 과정을 은밀하게 조작해서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적 선거 조작’ 등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종류의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파괴를 은폐한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 여부를 알아보는 실험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확실한 종점은 없겠지만.
데이비드 런시먼 저/ 최이현 역/ 글담출판사/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