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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치는 당신
  • 박서현 기자
  • 등록 2013-12-27 18:31:20
  • 수정 2013-12-27 18: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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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초식‧육식동물부터 세상에서 사라진 동물에 이르기까지, 500여 종 동물 이야기를 시인의 감성으로 읽어낸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물들을 때로는 인간의 관점에서, 때로는 ‘시인의 감성’으로 ‘사전’처럼 간결하고 유쾌하게 뜻풀이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 시인의 감성과 깨달음을 추임새처럼 덧붙이고 있다. 생물책과 철학책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자료가 시집이나 백과사전처럼 거듭 읽고 싶은 여지를 두게 한다.

이 책에는 수백 마리의 동물이 나온다. 인간사가 제각기 다르듯 동물 세계에도 포식자와 피식자, 사기꾼과 성자(聖者) 등 여러 계층, 여러 태도의 삶이 있다. 사람의 현실이 동물의 삶 속에서 재현될 때, 일상이 ‘동물스러워’ 보이는 낯선 경험을 할 때 슬그머니 배어나는 유머 또는 비감이 사람 사이에서만큼이나 속 깊은 교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은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시이면서 산문인 글을 모아 냈다. 저자는 여러 시집과 신화책에서 동물들이 사람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 한없이 아름답지도, 야만적이지도 않은 이들 동물의 세계를 색안경을 벗고 마주한다. 눈에 보이듯 아름다운 대로, 잔혹한 대로, 애틋한 대로 솔직하게 동물을 읽는다.

저자는 가장 본능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동물들에게 가장 인간다운 방식의 화답을 한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동원해 동물 세계를 경이해 마지않는 그의 존중법은, 그래서 무척 동물적이고 인간적이다.

▲본문 발취

순록의 경우 수컷의 뿔은 초겨울에 떨어진 뒤에 새로 자란다. 암컷만이 겨우내 뿔을 달고 있지. 그러니 코가 빨간 산타의 짐승 루돌프는 사실 주정뱅이 암컷이거나 내시 수컷인 거야. 뭐, 주정뱅이 내시일 수도 있고.
-31쪽, 루돌프의 정체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
-36쪽,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

녹색을 내는 색소가 없으면서도 박각시나방은 초록색 알을 나뭇잎에 낳는다. 천적이 발견할 수 없도록 위장색을 입힌 것. 어떻게 초록색 알을 낳는 걸까? 애벌레 시절에 먹은 잎의 엽록소를 몸에 저장했다가 알에 주는 거다. 박각시나방, 마음이 참 예쁘다. 이것이 진짜 어머니 마음.
-50쪽, 어머니의 마음 2

파리지옥은 꿀 바른 이파리 두 장으로 파리를 꾄다. 놀라운 건 이파리에 나 있는 감각모가 두 번 이상 움직여야 덫을 작동시킨다는 것. 그러니까 어렸을 때 하던 쌀, 보리, 쌀, 보리…… 게임이지. 한 번 건드리면 보리, 두 번 건드리면 쌀, 이런 거지. 잡고 나서 보면 파리지만.
-361쪽, 쌀과 보리 사이

출판사 : 마음산책, 608쪽.
정가 : 1만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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